[태극전사가 전하는 희망 메시지] ④ 골키퍼 정성룡

입력 2014-06-21 02:58

한국 축구대표팀의 골키퍼 정성룡(29)에겐 두 명의 아버지가 있다. 그를 낳아 준 아버지와 축구선수로 키워 준 아버지다. 정성룡의 생부가 1999년 세상을 떠난 이후 설동식 제주 FC U-18팀 감독은 정성룡을 아들처럼 아끼며 응원하고 있다. 정성룡에겐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미싱, 도배, 파출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한 어머니와 지적장애인인 누나가 있다. 설 감독과 어머니, 누나는 정성룡에게 축구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다. 이들이 있기에 정성룡은 어려운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아버지 같은 은혜 보답할께요”=설 감독은 1999년 정성룡을 처음 만났다. 당시 정성룡은 경기도 광주중 3학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었다. 설 감독은 정성룡을 서귀포고로 데려오기 위한 전학 절차를 다 마친 뒤 정성룡의 아버지와 둘이서 술잔을 기울였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정성룡의 아버지는 설 감독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우리 성룡이를 국가대표 선수로 키워 달라는 게 아닙니다. 많이만 먹게 해주세요. 형편이 시원찮아서 밥도 제대로 못 먹였습니다.”

이상한 부탁은 결국 유언이 됐다. 술자리를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붕에 기와 쌓는 일을 했던 아버지는 뇌 충격으로 쓰러진 지 사흘 만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설 감독은 장례식을 마치고 서귀포로 돌아온 정성룡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성룡아, 하늘에서 아버지가 널 지켜보고 계실 거야.” 설 감독은 정성룡의 합숙비를 면제해 줬다. 당시 정성룡의 집안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설 감독은 정성룡에게 “네가 좋은 선수로 성장한 뒤 갚으면 된다”고만 했다. 2003년 정성룡은 서귀포고를 졸업한 뒤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제주도를 떠나는 날 정성룡은 설 감독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감독님, 아버지 같은 은혜 꼭 보답할게요.”

◇“이번엔 누나를 위하여”=정성룡의 누나 정혜진(31)씨는 태어난 지 3개월만에 심한 경기를 일으킨 뒤 장애를 얻었다. 정성룡은 “누나는 내게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누나는 말을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한다. 그러나 찬송가를 들으면 참 좋아한다고 한다. 정성룡은 어렸을 때 가게에 가면 누나가 먹을 것까지 꼭 챙길 정도로 누나를 좋아했다.

정성룡은 축구를 하느라 누나를 자주 만나진 못한다. 올해 초 그는 미국과 브라질 전지훈련을 떠나면서 “지금까지는 아기와 아버지를 위해서 뛰어 왔다”며 “이번에는 누나를 위해서 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누나가 말을 하지 못해 대화는 못했지만 눈빛으로 ‘잘하고 오라’는 말을 건네 들었다”고 덧붙였다.

◇2회 연속 주전 골키퍼 수성=정성룡은 지난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팬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새로운 경쟁자 김승규가 급성장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치부심한 정성룡은 좋아하는 케첩도 끊고 몸을 만들어 월드컵 2회 연속 주전 골키퍼 자리 수성에 성공했다.

정성룡은 2008년 1월 칠레와의 평가전에서 후반전에 교체 출장하며 A매치에 데뷔했다. 이어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0년 정성룡은 남아공월드컵에서 부동의 주전이었던 이운재를 제치고 한국의 골문을 지켰다.

정성룡은 풍부한 경험이 큰 자산이다. 그는 대표팀에서 월드컵과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모두 경험했으며 소속팀에서는 K리그,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맛봤다. 정성룡은 지난 18일(한국시간) 브라질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브라질월드컵 H조 1차전에 주전으로 출장해 놀라운 선방쇼를 펼쳐 1대 1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정성룡은 20일 포스두이구아수에서 훈련을 마친 뒤 믹스트존에서 취재진과 만나 “브라주카는 슈팅을 때리면 골키퍼가 잡기가 쉽지 않다”며 “다른 팀들의 경기를 지켜봐도 결론은 마찬가지였다”고 동료들에게 찬스가 생기면 과감하게 슈팅하라고 주문했다. 이어 알제리와의 2차전에 대해 “알제리전은 16강의 향방을 정하는 중요한 경기”라며 “벨기에도 고전한 만큼 좀 더 집중해야 한다”고 승리의 의지를 다졌다.

포스두이구아수=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