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신앙강연 중 역사인식과 관련된 발언이 국민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 후보자의 근현대사 관련 발언으로 기독교인들도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사에 대한 문 후보자의 우발적 발언이 이렇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우리 겨레가 아물지 않는 역사의 상처를 지금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문 후보자의 민족역사 관련 발언은 일제의 식민지 역사와 위안부 문제, 6·25전쟁, 5·18광주민중항쟁 등이 박물관으로 간 과거지사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일깨웠다. 우리 겨레는 이런 굵직굵직한 과거사를 겨레 구성원의 합의를 통해 발전적으로 청산하지 못한 채 과거 역사가 남겨준 상처를 여전히 현재진행형 고통으로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시위를 하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대협 관계자들에게 일제의 역사는 과거지사가 아니라 장차 신원되어야 할 미완의 과업이다. 마찬가지로 6·25전쟁 전상자 가족이나 납북자 가족 단체에는 한국전쟁과 분단역사는 미완료된 현실이다. 이처럼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 역사로 문 후보자의 일부 발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첨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인식이라는 ‘분단’ 현실을 일깨워준다.
문 후보자에 대한 여론의 비판은 그의 민족사 발언이 교회의 신앙강연이라는 맥락에서 시의적 인화성을 지니고 있다. 여론의 질타는 ‘또다시 교회냐’ 식의 대중적 반기독교 정서에 편승해 무서운 맥놀이를 일으키며 확산되어가는 듯하다. 문 후보자에 대한 비판은 한국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자신의 살과 피로 끌어안는 데 실패한 한국 기독교의 유리된 역사인식을 겨냥하는 셈이다. 이 점에서는 한국 기독교회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문 후보자의 신앙강연 중 발언이 그의 역사관과 인생관 전체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단죄되는 현실은 민망스럽고 안타깝다. 기독교 신앙의 도래로 변화된 우리의 민족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겨레의 이전 성품상의 적폐를 부정적으로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을 창조해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한국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한 문 후보자의 발언 자체가 국민적 비난을 자초할 만한 수준의 조리 정연한 학문적 주장인지는 의심스럽다.
여기서 우리는 아물지 않는 과거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것을 발전적으로 청산하지 않는 한 근현대사의 여러 쟁점들은 순식간에 우리 겨레를 분열시킬 뇌관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분열된 겨레를 화해시켜야 한다. 역사의식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적 역사의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아벨의 핏소리를 들으시고 신원하시는 보편적인 정의의 하나님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식민지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공동체의 죄 때문에 일제의 식민지가 시작되었다’고 스스로 우리의 죄책을 고백하는 것과, 일제나 조선총독부 관리들이 가해자 입장에서 ‘하나님이 게으르고 악한 조선을 징치하기 위해 일제의 식민지가 되게 했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자칫 기독교의 하나님 섭리가 가해자의 압제 논리로 변질되지 않도록 정교하고 섬세한 하나님 섭리 이해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섭리’라는 이름의 몽둥이를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변덕스러운 군주가 아니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심지도 다시 돋우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당신의 독생자에게 인간의 모든 죄 짐을 떠맡기시며 사랑 때문에 친히 상처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김회권 숭실대 교수
[특별기고-김회권] 문창극 후보자 논란에 대한 단상
입력 2014-06-20 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