넒은 전시장 안, 형형색색의 책들이 조명을 받아 빛나며 런웨이를 걸어가는 도도한 모델들처럼 한껏 뽐을 낸다. 책을 보려 줄지어 선 사람들, 열심인 표정으로 책을 설명하는 사람들.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며 눈을 마주치는 작가들. 보이지 않는 열정이 책의 공간 속에서 춤추고 있다. 사무실 등 저마다 공간에서 이뤄지던 책과의 호흡 그 내밀한 독무가 커다란 잔치마당에서 열띠고 웅장한 군무가 되어 펼쳐지는 곳, 해마다 6월이면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이다.
처음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가장 가슴 뛰는 일이 바로 도서전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서 있느라 끙끙 앓았지만 쑥스러운 듯 부스로 들어오는 독자 분들을 안내하는 일이 그렇게 재미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홍보대사가 된 듯했다. 쉬는 시간엔 다른 출판사 부스를 구경 가선 무슨 책들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그곳에서 일하는지를 흘깃 탐문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올 땐 이것저것 책자들을 담아온 보따리 하나와 나도 좋은 책을 만드는 멋진 편집자가 되겠다는 포부도 한 보따리 담겨 있었다. 그 왁자한 시장 같은 전시장은 내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게 해준 공간이었다.
올해 오랜만에 도서전에 참가하게 돼 며칠 전 책을 정리하러 나갔다. 아직 설치가 채 끝나지 않은 전시장에 서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직접 만든 책 한 권 없던 편집자가 이제는 제법 경력자가 되어 책을 진열하고 있으니 말이다. 책도 변해 전자책 전시장이 설치되고 있었고, 멀티미디어로 책을 감상하는 도구들이 곳곳에 설치되었다.
한껏 들떠 정리 작업을 마치려던 찰나 지난해보다 도서전 규모가 줄었다는 이야기에,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세태와 길어지는 불황에 대해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걱정을 품은 채 시작한 도서전 첫날. 사람들 웃음소리와 책을 보는 이들의 도란거림이 다시 전시장에 불을 밝힌다. 책의 뒷면을 보시며 당신이 이 책 만든 편집자냐며 묻는 독자 분의 미소에 나 역시 미소가 배어나왔다.
긴 하루가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온 나는 불경기라서, 책보다 더 재미난 도구가 늘어나 책을 읽지 않아서, 그래서, 더 좋은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한 보따리 담아왔다. 만드는 이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각오들이 빚어낼 책의 잔치. 이번 주말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이 공간을 걸어 다니며 책의 향기에 취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
[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책 잔치, 서울국제도서전
입력 2014-06-20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