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02’ 하나된 대∼한민국

입력 2014-06-19 03:39
브라질월드컵 한국과 러시아 경기가 열린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대형 태극기를 펼치며 응원을 하고 있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지만 1만8000여명이 ‘붉은악마’ 응원전에 동참했다. 연합뉴스
출근과 등교 때문에 월드컵 응원 현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이 18일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월드컵 응원전을 마친 시민들이 인근 서울광장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글귀를 살펴보며 걷고 있다. 연합뉴스
들어갈 듯 말 듯 애태우던 공이 러시아 골대를 향해 길게 날아갔다. 시간이 멈춘 듯한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18일 오전 8시23분. 정적은 곧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바뀌었다. 시민들이 밤을 새우며 새벽응원에 나선 전국 거리 곳곳이 붉은 물결에 휩싸였다. 축구 국가대표팀 이근호 선수가 브라질월드컵에서 첫 골을 넣은 순간이었다.

◇새벽 경기에도 거리응원 열기 ‘후끈’=러시아전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저녁부터 붉은 옷을 입은 시민들은 대형 무대와 스크린이 설치된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에 모여들었다.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지만 응원 열기를 막지는 못했다. 오후 10시쯤 대형 전광판 앞 조명 4대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지며 본격적인 축제의 막이 올랐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광화문광장 주변에는 차단 장애물이 설치됐고 10m 간격으로 경찰도 배치했다.

축제의 열기는 뜨거웠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에도 시민들의 표정에서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말고사를 치르는 대학생들도 전공 서적을 안고 거리응원 현장을 찾았다. 경기도 일산에서 온 소모(23·여)씨는 “오늘이 기말고사인데 버스 타고 학교에 가던 중 자꾸 대형 스크린에 눈이 쏠려 결국 버스에서 내렸다”며 “경기만 보고 시험 보러 학교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와 지하철 첫차 운행이 시작된 오전 4∼5시쯤에 인파는 급속히 불어났다. 시민들은 김밥과 샌드위치 등을 손에 쥐고 들뜬 표정으로 ‘응원 명당’을 찾아다녔다. 일부 직장인들은 갈아입을 ‘출근용 양복’과 서류가방을 챙겨 왔다. 이날 응원전이 치러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는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시민들은 아예 일회용 비옷을 입고 나와 백사장 모래를 밟으며 경기를 즐겼다.

강남구 영동대로에도 1만9000여명이 모였다. 이곳에서는 전날 밤부터 가수 싸이 등이 열띤 무대를 펼치며 응원 열기를 돋우었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곳곳에서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벌써 잊으셨나요’라고 쓴 피켓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선 방한나(33·여)씨는 “세월호 참사 후 뉴스를 보는 것조차 힘들고 나도 잊고 싶었지만 진상 규명도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걸 보니 걱정돼 나왔다”고 말했다.

◇선취골에 환호, 동점골에 탄식=오전 7시 경기 시작 직후부터 한국과 러시아가 팽팽히 맞서자 시민들은 내내 가슴을 졸였다. 후반 23분 이근호 선수의 슛이 마침내 러시아 골문을 뒤흔들자 2만명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장관이 펼쳐졌다.

골이 주는 달콤함은 길지 않았다. 선취골 6분 만에 러시아 알렉산더 케르자코프 선수가 동점골을 넣었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기저기서 “괜찮아, 괜찮아”를 외치며 응원을 이어나갔다. 직장인 최기욱(27)씨는 “러시아가 강할 줄 알았는데 과대평가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골 득실 내기에서는 졌다”면서도 어려운 상대에게 무승부를 거둔 데 대해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서울에서는 오는 23일 알제리전과 27일 벨기에전 때도 광화문광장과 영동대로 일대에서 대규모 거리응원 행사가 열린다.

정부경 김동우 기자, 부산=윤봉학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