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부지를 잡아라”… 삼성·현대車 자존심 건 ‘땅 전쟁’

입력 2014-06-20 02:55

재계 1·2위 그룹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사이에 '땅'을 둘러싼 전운이 감돌고 있다. 두 그룹은 올 하반기 부지 매각을 위해 공개입찰을 추진 중인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서울 강남에 남은 마지막 금싸라기 땅인 한전 본사 부지를 이용하려는 목적은 두 그룹이 각각 다르지만 양측 모두 배수진을 치는 분위기다. 여기에 재계 순위 1·2위 그룹 간 자존심 싸움까지 겹치면서 한바탕 '땅 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구체화되는 개발 청사진=연내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한전은 본사 부지를 내년까지 팔아야 한다. 코엑스 맞은편에 위치한 한전본사 부지는 7만9341.8㎡로 축구장 12개를 합친 크기다. 공시지가만 1조4830억원에 달하고, 시세는 3조∼4조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기업 중 이만한 자금을 동원할 기업은 삼성과 현대차 두 곳뿐이다. 한전은 구체적인 본사 부지 매각 방안과 일정을 조만간 마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서울시와 협의하고 이르면 올 3분기에 매각입찰 공고를 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지난 4월 ‘코엑스∼잠실운동장 종합발전계획’을 내놓고 이 일대를 국제업무 핵심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한전본사 부지를 포함해 이 일대를 전시, 컨벤션, 국제업무, 관광숙박시설 중심지로 개발할 방침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이 계획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까지 한전과 땅 매각을 위한 협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 지역의 지구단위계획 등 세부적인 개발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2차 용역을 공고 중”이라고 밝혔다.

두 그룹이 이 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서울 강남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이점 이외에 고밀도 개발이 가능한 땅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코엑스와 잠실운동장 일대 개발을 위해 현재 제3종 주거지역인 한전 부지를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해줄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250%인 용적률은 800%로 높아지고 층수 제한까지 사라져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 건축도 가능해진다. 대신 서울시는 전체 부지의 40%가량을 기부채납 받아 기반시설 조성비용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발 빠른 현대차, 명분 내세워 ‘선공’=현대차는 한전 본사 부지 매입에 필사적이다. 구체적인 매각방식 등이 결정되기도 전에 ‘이 땅을 원한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다. 전 계열사를 동원해 현대차가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당위성을 알리며 총력 태세에 돌입했다.

현대차는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이 전 그룹 계열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2006년 서울 성수동 뚝섬 인근에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지상 110층, 높이 540m의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건설을 추진했다. 현대차 본사 사옥의 수용인원은 4000∼5000명에 불과해 2만명에 달하는 관리직 임직원들이 서울·수도권에 흩어져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는 50층, 200m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지역으로 정한 도심, 부도심 범위에서 이 지역을 제외했다. 결국 GBC 건립은 무산됐고, 한전 본사 부지가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현대차는 19일 한전 본사 부지 매입에 성공할 경우 이곳을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로 활용하겠다고 밝히며 명분을 선점하고 나섰다. 그룹과 계열사 사무실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고급호텔, 컨벤션센터, 대형 쇼핑몰, 자동차 전시장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컨트롤 타워’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 측은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를 지으면 현대차가 해외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국내로 끌어올 수 있어 경제적 부가가치도 엄청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간 10만명가량 동원되는 그룹 행사를 국내에서 소화할 경우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또 개발을 통해 들어서게 될 자동차 박물관이나 친환경차 전시관 등은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독일 폭스바겐은 매년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아우토슈타트라는 자동차 테마파크를 운영 중이다. 일본 도요타는 50여년 전 이미 자동차 박물관을 세웠다. 현대차 관계자는 “우리는 대규모 개발을 하면서 개발로 인한 차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며 “정말 건물이 필요해 부지를 원하고 있고, 그 부지를 직접 개발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여유 속 사전작업으로 ‘역공’=삼성은 한전 부지 매입과 관련해 ‘그룹 차원의 입장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에서 해당 토지 매입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며 “실무진이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해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한전 본사 땅은 연구소나 주거공간 상업시설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요건을 갖추고 있다”며 “돈만 있다면 누구나 욕심내는 땅”이라고 말했다.

실제 매입 여건에서도 삼성이 한 발 앞선 상황이다. 삼성은 2009년 삼성물산과 포스코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전 부지 일대 복합상업시설 개발 방안을 내놨다. 삼성물산 컨소시엄은 당시 10조원을 투자해 한전, 서울의료원, 한국감정원 등의 부지와 주변 민간 토지를 합쳐 전체 부지면적 14만3500m² 규모의 복합단지를 개발하겠다는 제안서를 서울 강남구에 냈다.

2011년에는 삼성생명을 통해 한전 옆 옛 한국감정원 본사(1만988㎡)를 2436억원에 매입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한전 본사 부지를 추가로 매입해 함께 개발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서울시도 한전 본사 부지와 코엑스·감정원·서울의료원·잠실운동장 등을 연계 개발토록 유도할 방침이다. 따라서 삼성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분석이 많다.

삼성이 한전 본사 부지 개발에 나설 경우 업무시설과 관광숙박시설 등을 지어 임대사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또는 대규모 연구시설을 만들거나 잠실 롯데타운과 같은 삼성타운으로 개발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 관계자는 “서울시가 구체적인 개발계획도 내놓지 않았고, 한전이 본사 부지 매각 시기와 방법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투자 여부를 말하기 어렵다”면서 “삼성도 이 부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개발 방법에 대한 다양한 검토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