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후보자 파문] 朴心 떠났나… 文의 ‘셀프 사퇴’ 압박 포석?

입력 2014-06-19 03:31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8일 자신의 집무실이 마련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으로 출근,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문 후보자의 표정이 굳어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할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서류의 재가를 중앙아시아 순방 이후로 미루자 여권 전체가 문 후보자 카드를 접는 수순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은 이미 문 후보자의 ‘셀프 사퇴’나 ‘지명 철회’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해석이다. 청와대는 표면적으로는 “국익이 걸린 순방 일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18일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2기 체제를 하루빨리 출범시켜야 하는 청와대가 시급한 총리 인준 절차를 미뤘다는 것은 여권 내부에서조차 급속히 번지는 비토 여론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총리 인준 절차 연기 배경은=당초 청와대는 문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및 인사청문요청서를 지난 16일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다 하루 늦춰 17일로 연기했다가 이번에는 아예 박 대통령의 순방이 끝나는 21일 이후로 미뤄 버렸다. 거기다 순방 이후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못 박지 않았다. 재가 여부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얘기다. 전날 박 대통령의 빡빡한 일정 등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전자결재할 시간을 놓쳤다는 청와대 설명과는 확연히 다른 뉘앙스다.

이런 변화는 여론을 신중하게 살피면서 문 후보자에게 스스로 사퇴 여부를 결정할 시간을 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박 대통령이 직접 선택했던 문 후보자를 지명 철회하기보다는 먼저 본인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덜겠다는 포석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무엇보다 새누리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자 반대 의견이 7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여론이 심상치 않은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자 카드를 고수하며 본회의 표결까지 가더라도 여당 내 반발 표를 감안하면 통과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판단도 깔려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7·30 재·보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야당에 발목을 계속 잡히기보다는 빨리 털고 가는 게 정치적 이득이란 논리가 작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류가 된 '반(反)문 기류'=친박(친박근혜)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전날에 이어 다시 문 후보자 사퇴를 촉구했다. 서 의원은 "당과 국민을 위해, 현 정부를 위해서라도 이럴 때는 본인이 스스로 판단해 모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 의원과 당권을 경쟁하고 있는 김무성 의원도 발언 수위를 높였다. 그는 "문 후보자는 적극적 해명이 부족하다"며 "해명한 뒤에도 국민 여론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대통령과 당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본인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여론이 싸늘해진 것은 '문 카드'를 밀어붙였다 실패할 경우 '청와대 인사 실패론'이 7·14전당대회뿐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 대세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초·재선 등 일부 비주류 쇄신파의 목소리에 그쳤던 '문 후보자 불가론'은 이제 주류를 이루게 됐다. 전날까지 문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던 야당을 '배째라당'이라며 맹비난하던 새누리당 지도부의 스탠스도 달라졌다. 공개석상에서 문 후보자를 적극 엄호하는 공격적인 발언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당 지도부가 문 후보자의 1시간10분짜리 교회 강연 영상을 공개적으로 시청하고, 반발 기류를 보인 초선의원 등을 설득하며 정면돌파 의지를 보인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고립무원 문창극=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의 귀국 전까지는 자진 사퇴하지 않고 청문회 준비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에서 퇴근하면서 박 대통령의 재가 검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게 "대통령께서 (순방에서) 돌아오실 때까지 저도 여기서 차분히 앉아서 제 일을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청문회 준비단 관계자도 "후보자의 입장은 전혀 변한 게 없는 것으로 안다. 오후 내내 각종 국정현안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며 '예비총리 수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 후보자는 오전 출근하면서 '독도에 현실적 위험이 없다'는 내용의 2006년 칼럼에 대한 질문을 받자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라며 "제가 직접 독도를 간 적이 있고, 그때도 이것은 분명히 우리 땅이고 독도가 있어 우리의 동해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썼다"고 적극 해명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