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가슴에 쌓였던 울분을 한번에 날린 골이었다. 18일(한국시간)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후반 23분 강력한 25m 중거리슛으로 한국에 첫 골을 안긴 이근호(29·상주 상무)는 더 이상 ‘불운의 아이콘’이 아니었다.
이근호는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3골을 넣었다. 대표팀 승선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유럽 진출 실패와 컨디션 난조로 본선 개막 보름 전 최종 전훈지인 오스트리아에서 쓸쓸히 귀국해야 했다.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입고 돌아오는 게 창피했던 그는 면세점에서 옷을 사서 갈아입고 취재진의 눈을 피해 몰래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는 대표팀 낙마로 한동안 절망에 빠졌으나 브라질월드컵을 가슴에 새기며 다시 일어섰다. 2012년 말 그는 상무에 입대했다. 동갑내기 친구인 박주영이 23세 이하만 출전하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대표팀에 뽑혀 동메달을 딴 덕분에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것과 비교됐다.
이번 월드컵 출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난 3월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왼쪽 무릎 부상을 당했다. 수술대에 오르면 월드컵 출전은 또다시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다행히 재활치료로 회복됐지만 그는 최종 엔트리 발표까지 노심초사해야 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한 이근호는 후반 박주영과 교체 투입되자마자 골을 넣었다. 그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 골이었다. 그는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나 “운이 좋았다. 설움을 떨치는 상상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내 골이 결승골이 못 돼서 아쉽다”며 “알제리전에선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조커’ 이근호 25m 벼락슛 16강 희망 쐈다
입력 2014-06-19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