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제국의 위안부’

입력 2014-06-19 02:41
김성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일본군 위안부를 여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음지에 있었던 위안부 문제를 환기시켰다. 17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징집된 윤여옥(채시라 분)은 중국 난징에 있는 관동군 15사단에서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을 하던 중 학도병으로 끌려간 최대치(최재성 분)와 만나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대치는 버마로 떠나기 전날 밤 여옥에게 “꼭 살아 있어”라고 말하고 여옥은 차마 철조망 사이로 잡은 손을 놓지 못한다. 두 사람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이별의 키스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여운으로 남아 있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 만주와 동남아 등지로 떠돌며 일본군의 성 노예로 살아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힘없어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다. 일본군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공식 문서를 찾아내 1993년의 ‘고노 담화’를 이끌어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일본 주오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8만∼20만명으로 추산되며 그중 조선인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 정부에 공식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37명이다. 지난 8일 배춘희 할머니가 91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생존자는 54명 남았다.

엊그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정복수(98) 할머니 등 9명이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소한데 이어 책의 출판·판매·광고 등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동부지법에 냈다.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33쪽) 등의 주장들이 할머니들을 화나게 한 것이다.

박 교수는 책에서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민족 요인보다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라고 주장한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을 군대의 성 노예로 부리는 전근대적 차별문화와 조선인 (성매매)업자들도 문제였다는 그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이 일본군 동원의 강제성을 희석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같은 날 청와대 앞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8)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배상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죽어서 나비가 되어 온 세상을 날아다니고 싶다는 위안부 할머니들. 그 상처가 덧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