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보라매 사업 서두르자

입력 2014-06-19 02:46

무기수출 금지 빗장을 걷어낸 일본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11일 아베 신조 총리는 도쿄의 총리 집무실에서 데이비드 존스턴 호주 국방장관과 줄리 비숍 외무장관을 만났다. 스텔스 잠수함 공동개발을 위한 협의를 위해서다. 앞서 일본 방위성은 독일과 전차 관련 기술 공동개발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4월에는 자위대에 요격미사일 패트리엇2(PAC-2)용 고성능 센서를 공급해온 미쓰비시중공업이 미국에 이 센서를 수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5월에는 프랑스와 수중 경계용 무인 잠수기 등을, 영국과는 공대공 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는 장치를 공동개발키로 했다.

우리나라 방산업계에서 우려해왔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라는 오명을 의식해 무기 수출을 금지해왔던 일본은 지난 4월 1일 ‘무기수출 3원칙’을 전면 개정했다. 일본이 1967년 공산국가, 유엔 결의로 무기 수출이 금지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 및 그 우려가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기 수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47년 만이다. 이 원칙을 바꾼 지 3개월도 안돼 일본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숨가쁘게 공동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전에도 일본은 무기류를 수출했다. 1991년 걸프전 때 사용된 미군 첨단무기 가운데 주요 부품이 상당수 일본 제품이었다. 정밀유도폭탄 부품은 80% 정도가 일본산이었다. 그간 일본의 무기류 수출은 부품류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완제품과 첨단기술 이전도 가능해진 것이다. 최근 움직임을 보면 ‘우리 기술로 확보한 최첨단 방위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했던 아베 총리의 발언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이런 성과를 올리는 데는 앞선 일본 기술에 대해 국제적인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정권에 따라 무기획득 정책이나 방식이 바뀌기 일쑤인 우리와 달리 무기기술 개발과 획득에 수십년간 일관된 원칙을 고수해왔다. ‘자국기술’ 개발에 우선권을 둔다는 점이다. 전투기를 도입할 때도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핵심 기술을 이전받아 자체 생산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했다. 예산이 많이 들어도 국산 제품을 개발하고 기술을 축적했다. 덕분에 일본은 미국이 탐낼 정도의 첨단 기술을 확보했다. 자위대가 사용하고 있는 무기류의 90%가 자국산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도 이명박정부 시절부터 방위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박근혜정부도 방위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표적인 사례가 10여년간 ‘개발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보라매 사업이다. 우리 기술로 전투기를 만들어보겠다는 한국형 전투기 사업인 ‘보라매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2002년이다. 그간 6차례에 걸쳐 타당성을 조사해 지난해 일단 개발에 들어가기로 했다. 올 들어 국방부는 어떤 형상으로 개발한 것인가를 놓고 검토 작업을 하고 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6조∼8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이는 대형 사업인 만큼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다릴 시간이 넉넉지 않다. 2020년이면 공군이 사용하는 전투기 가운데 200여대가 노후화돼 퇴역해야 한다. 자칫 전력공백이 생길 수 있다. 글로벌 항공산업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선·후발국 간 핵심 기술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급격하게 벌어지는 추세다. 우리나라와 같은 항공기술 후발주자들에게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우리는 훈련기 KT-1, T-50을 통해 어느 정도 항공기술을 축적했다. 하지만 항공전자체계 같은 중요한 기술은 여전히 다른 나라의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기술종속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만들어봐야 한다. 군이 보라매 사업을 통해 항공산업의 핵심 기술을 확보해 기술종속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욕을 가졌으면 한다. 돌다리만 두드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돌다리를 밟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