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오면/ 강천산으로 때동나무 꽃 보러 갈라네/ 때동나무 하얀 꽃들이/ 작은 초롱불처럼 불을 밝히면/ 환한 때동나무 아래 나는 들라네/ 강천산으로 때동나무 꽃 보러 가면/ 산딸나무 꽃도 있다네/ 아, 푸르른 잎사귀들이여/ 그 푸르른 잎사귀 위에/ 층층이 별처럼 얹혀/ 세상에 귀를 기울인 꽃잎들이여.’(김용택 시인의 ‘강천산에 갈라네’ 중에서)
전북 순창의 산과 강은 초여름 풍경이 수채화처럼 은은하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유월이 오면 가고 싶다고 한 팔덕면의 강천산(584m)은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폭포가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명산이다. 특히 병풍폭포에서 구장군폭포까지 2.5㎞ 구간은 황토를 다져 만든 평평한 산책로라 맨발로 걷는 촉감이 부드럽다.
계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천산 산책로는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20여년 전 애기단풍을 비롯해 20종의 단풍나무를 심어 가을에는 산과 계곡이 울긋불긋한 채색화를 그린다. 녹음이 짙어지는 유월은 경치도 아름답지만 폭포의 음이온과 활엽수의 피톤치드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심신이 청량해진다.
강천산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절경은 40m 높이의 병풍폭포. 절벽에서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가 오후 햇살에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병풍폭포는 2002년에 만들어진 인공폭포이다. 하지만 절벽에 이끼가 자라고 작은 소(沼)로 폭포수가 떨어져 자연폭포보다 더 자연스럽다.
20m 높이로 훌쩍 자란 22그루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를 지나면 강천사 앞 계곡 건너편에 위치한 삼인대(三印臺)가 눈길을 끈다. 작은 비각 속에 보존된 삼인대는 조선 중종 때 폐비 신씨의 복원을 주창한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류옥이 죽음을 각오하고 각자의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어 놓은 후 신씨 복위 상소를 올렸던 의리의 장소이다.
강천사를 지나 구름다리를 오르는 등산로에 조성한 대나무 숲길도 운치가 있다. 여기서 10분 정도 걸으면 강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를 만난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현수교인 구름다리는 지상 50m 높이에 폭 1m, 길이 76m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거려 정신이 아득해진다. 구름다리 아래로 펼쳐지는 초록물결은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다시 철계단을 내려와 가던 길을 10분 정도 걸으면 순간 시야가 확 트이면서 왼쪽으로 120m 높이의 구장군폭포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마한시대 아홉 장수가 죽기를 결의하고 전장에 나가 승리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구장군폭포는 쌍폭으로 장마철에만 폭포수가 쏟아지는 마른 폭포이지만 물을 끌어올려 사계절 폭포수가 쏟아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인 강천산의 매력은 맨발산책로 외에도 숲 속을 지나는 데크산책로, 신선봉·산성산·광덕산·강천산·옥호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강천산은 산세가 높지 않은 대신 아기자기한 풍경을 품고 있어 걸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요산요수라고 산을 즐겼으면 강을 만날 차례이다.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임실군을 거쳐 순창 동계면 어치리 내룡마을의 장군목유원지에 진입하자마자 기기묘묘한 형태의 너럭바위들을 만난다. 장군목은 험준한 산봉우리인 용궐산과 무량산이 마주보고 있는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에서 비롯된 말이다.
장군목유원지의 현수교 하류에 위치한 거대한 너럭바위에는 돌개구멍이 무수하게 패어 있다. 포트홀(Pot Hole)로 불리는 돌개구멍은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모양의 구멍이라는 뜻이다. 돌개구멍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학자들은 하천에 의해 운반되던 자갈 등이 오목한 모양의 너럭바위에 들어가 소용돌이치는 강물과 함께 회전하면서 오랜 세월 포트홀 내부를 마모시켜 항아리 모양으로 발달한다고 한다.
장군목유원지의 돌개구멍 중 으뜸은 요강바위이다. 바위 가운데가 요강처럼 움푹 패어 요강바위로 명명된 돌개구멍은 둘레 1.6m, 깊이 2m, 무게 15t으로 우물처럼 생겼다. 한국전쟁 때는 주민 다섯 명이 요강바위 속에 몸을 숨겨 북한군으로부터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강원도 영월의 요선암 돌개구멍보다 더 수려한 장군목유원지의 돌개구멍은 모양도 천태만상이다. 어떤 돌개구멍은 용틀임을 하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형상이고, 어떤 돌개구멍은 고요한 호수를 연상하게 한다. 이런 너럭바위가 장군목 일대에는 섬진강을 따라 3㎞나 이어진다.
섬진강 물줄기가 수많은 돌개구멍으로 단장한 너럭바위를 어루만지며 느릿하게 흘러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던 장군목유원지.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 빗물이 고인 돌개구멍의 거울 같은 수면에는 순창의 맑고 푸른 산과 하늘이 담겨 있다.
순창=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강천산·섬진강 합작 수채화 그렸네… 순창에서 만나는 초여름 힐링 여행
입력 2014-06-19 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