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사 자리 ‘3500만원+α’… 어느 공고의 ‘채용 장사’

입력 2014-06-18 02:55

한국전력공사가 출연해 운영하는 에너지 분야 특수목적고교 수도전기공고의 교사 채용 과정에서 1인당 수천만원씩의 뒷돈과 청탁, 시험성적 조작 등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도공고 현직 교감과 한전에서 파견된 간부가 ‘채용 장사’를 주도했다. 검찰은 교사 수급 불균형 때문에 사립학교 채용 비리가 만연한 것으로 보고 다른 학교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교사 채용에 ‘3000만원+α’ 뒷거래=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송규종)는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수도공고 황모(50) 교감을 구속 기소하고, 뒷돈을 상납 받은 한전 부장 여모(53)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채용 대가로 뇌물을 준 이 학교 교사 정모(33)씨와 다른 교사의 아버지 이모(60)씨도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 강남의 마이스터고인 수도공고는 2012년 11월에 2013학년도 신규교사 채용 공고를 냈다. 1차(인적성 검사, 전공·논술시험)와 2차(면접 및 실기평가) 시험을 거쳐 정교사 11명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2010년부터 이 학교 기간제 교사로 근무해온 정씨는 황 교감에게 정교사가 되도록 도와 달라고 청탁했다. 정씨는 2012년 11월 9일 자정 무렵 황 교감 집 근처로 찾아가 현금 3500만원을 넣은 노스페이스 가방을 건넸다. 황 교감이 돈 가방을 받아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정씨 차량의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겼고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이 영상을 확보했다. 정씨는 다음 달 황 교감에게 하철경(61) 화백의 한국화 2점(400만원 상당)을 추가로 건네기도 했다.

함께 기소된 이씨는 수도공고 기간제 교사인 아들의 정교사 채용을 부탁하며 황 교감에게 현금 3000만원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건넸다. 이씨는 경남 지역 공고 교사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의 뒷거래는 2012년 12월의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강남 대로변에 정차한 황 교감 차 안에서 이뤄졌다. 황 교감은 이후 정씨 등에게 전공시험 출제 영역과 출제 비율, 논술시험 지문의 저자 등 여러 시험 정보를 알려줬다. 결국 정씨는 정교사가 됐지만 이씨 아들은 탈락해 여전히 기간제 교사로 있다.

◇법인관리실장이 시험 성적 바꿔치기=황 교감은 지난해 2월 정씨를 최종 합격시키는 데 도움을 준 답례로 한전 부장 여씨에게 하철경 화백의 한국화 1점과 현금 500만원을 상납했다. 여씨는 2012년 3월부터 수도공고 법인관리실장으로 파견돼 신규교사 채용 업무를 총괄했던 인물이다.

여씨는 논술시험 응시자 291명 중 282명의 점수를 교묘하게 뒤섞는 수법으로 최종 합격자 가운데 3명의 당락을 뒤바꿨다. 당초 답안지 채점은 응시자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이름이 아닌 1번부터 291번까지 번호를 부여해 진행됐는데, 이름을 확인할 권한이 있던 여씨가 최종 단계에서 응시자들의 점수를 바꿨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를 통해 최종 합격한 교사 3명은 뒷돈을 줬던 정씨 등과는 다른 이들이다. 검찰은 여씨와 교사들 간의 금품 거래 등을 추적했으나 이 부분은 규명하지 못했다. 여씨는 “엑셀 작업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간제 교사에 대한 학교의 ‘갑(甲)질’=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기간제 교사들이 수시로 회식 자리에 불려나가 술값을 계산하거나 학교 관계자들에게 고가의 선물 공세를 벌인 사실을 확인했다. 부친이 교감에게 3000만원을 준 기간제 교사는 탈락하고도 나중에 다시 정교사 채용에 응시해야 하기 때문에 돈을 돌려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경기침체와 구직난으로 정교사를 희망하는 기간제 교사가 늘다 보니 채용 과정에 거액이 오고간다는 얘기가 만연해 있다”고 전했다. 서울 사립학교의 국·영·수 과목 정교사는 1억원, 예·체능 및 제2외국어 교사는 1억5000만원 정도의 ‘채용 단가’가 형성돼 있다는 소문도 검찰에 포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