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월드컵, 열정과 냉정사이] 꾸벅꾸벅… 직장인은 조는 중

입력 2014-06-18 03:04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간 17일 정오. 중구 통인시장에서 냉콩국수를 먹던 직장인 김모(57)씨는 연신 꾸벅꾸벅 졸았다. 반쯤 풀린 눈에 젓가락질은 자꾸만 엇갈렸다. 김씨는 오전 1시에 열린 브라질월드컵 독일-포르투갈전과 이어진 미국-가나전까지 모두 생중계로 시청하고 출근했다. 그는 “포르투갈의 호날두가 너무 못했다”며 마지막 국수가락을 다 먹을 때까지 동료들과 축구 이야기만 했다.

‘새벽 축구’ 때문에 신체 리듬이 엉망이 됐다고 호소하는 직장인이 많다. 밤새 먹은 야식이 얹혀 복통을 앓거나 한창 바쁜 낮에 사무실 한구석에 쓰러져 자거나 하는 식이다.

직원 대부분이 남성인 한 게임제작업체는 비상이 걸렸다. 직원 권창근(27)씨는 “새벽에는 축구 보고 일과 중에 낮잠을 잔다”며 “퇴근 후에도 동료들과 축구 비디오게임을 하러 간다”고 말했다. 사내 휴식공간은 쪽잠을 자려는 직원들로 종일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한국무역협회 직원 이재탁(28)씨는 며칠 새 잔뜩 불어난 살이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야근 후 귀가해 새벽에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보다 보니 갑자기 살이 확 쪘다”고 털어놨다. 상대적으로 월드컵에 흥미가 덜한 여직원들의 불만도 늘고 있다. 경기도 판교의 IT 기업에서 일하는 김새롬(26·여)씨는 “남자 동료들이 모이면 축구 얘기만 하고 사무실에서도 축구 하이라이트 방송을 틀어 놓는다”고 토로했다.

일부 회사들은 우리나라의 첫 경기가 열리는 18일 출근시간을 아예 10시 이후로 늦추기로 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