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 이후 고향인 대구에 갔다. 오래전 약속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대구시장 선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대부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김부겸에 관한 것이었다. “대단하다” “담에는 일내겠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그가 얻은 득표율 40.3%는 놀라운 것이었다. 영남일보는 ‘마의 40%를 뚫었다’라는 표현까지 썼다. ‘지고도 이긴 선거’라는 언론의 분석이 틀린 게 아니구나 라는 반응이 현지에서 읽혔다. 이번 지방선거 때 그를 아주 가까이서 도운 고교 후배는 “담에는 무조건 됩니더. 형님 대구도 인자 바뀝니데이”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김부겸은 패자임에도 오히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삼세판’이란 말로 현재의 심경과 앞으로의 행보를 대변했다. 거의 모든 언론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흔히 삼세판이라고 하는데 한번은 더 도전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서 한번 더 야당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삼세판은 ‘더도 덜도 없이 꼭 세 판’이란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세 번째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확신에 다름 아닌 듯했다. 일각에서 ‘대통령감’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본인의 기대감이야 오죽하겠나.
그러나 나는 김부겸의 삼세판이 자신과 측근들의 열망대로 쉽게 성공적 결말을 맺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대구는 이번 선거에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은 투표율(52.3%)을 기록했다. 매일신문은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 “(투표율이 전국 최저인 것은) 특정 정당을 향한 뚜렷한 지역색이 지역민의 투표 의지를 꺾은 데 있다”고 보도했다. 투표 안 해도 새누리당이 이길 게 뻔해서 투표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만큼 대구의 표심은 새누리당을 향한 공고한 지지도, 즉 깨기 힘든 지역주의로 똘똘 뭉쳐 있다. 대구에서 만난 친구들은 “정당을 보면 당연히 권영진이지만 대구와의 인연은 고등학교를 이곳서 다닌 것밖에 없어 내키지 않았고, 김부겸을 선택하자니 ‘제품’은 괜찮은데 ‘공장’이 마음에 걸려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인물이 좋아도 대구에서 야당은 어쩔 수 없는 걸림돌이란 설명이다.
더욱이 총선은 지방선거에 비해 정당과 정당의 대결 구도가 훨씬 강하다. 대구에서 절대 갑인 새누리당과 야당의 싸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보다 그에게 유리할 게 없다. 지난 19대 총선에 비해 이번에 수성갑에서 7% 포인트 더 득표했다고 하나 그대로 다음 총선에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섣부른 예단이지만 맞붙을 사람이 현재의 경쟁 상대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처럼 4선에 70대의 노회한 정치인이 아니라 개혁 성향의 신진이 등장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부겸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파괴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선거 후 YTN과의 대담에서 노무현에 대해 “알곡 같은 분, 꽉 차신 분이며 문제가 생기면 절대 피해가지 않는 분”이라고 한 반면 스스로에 대해서는 “좀 물렁하고 자꾸 피해간다”고 평가했다. 겸양의 표현이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나는 김부겸이 삼세판이라는 말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내 전망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세 번째 도전에 실패하면 왠지 대구를 떠날 것 같고, 그렇다면 ‘지역주의 극복’도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탈 지역주의’를 위해 몸을 바치기로 한 소신이 유효하다면 삼세판에서 지더라도 네 번, 다섯 번 거듭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본인이 결실을 거두지 못하면 어떤가. 밀알로 썩어 토양이 되는 것도 괜찮은 것 아닌가.
선거가 끝난 지 보름이 됐는데도 대구에서 김부겸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가 그토록 계승하기를 바라는 ‘국민통합추진회의’의 정신을 실현하고 본인 말대로 대구에서 ‘더 의미 있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삼세판의 굴레에서 빨리 빠져나오길 바란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정진영 칼럼] 김부겸의 삼세판
입력 2014-06-18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