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정치(gerontocracy)는 정통 정치학 용어는 아니지만 정치 주체가 노인이라는 의미와 정책이 노인 위주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지역구 세습이 자연스러워 다선 의원이 수두룩한 일본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정체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안정 위주의 편안한 길을 가기 때문에 역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우리나라도 한때 노인정치가 판을 쳤다. 해위(海葦) 윤보선과 옥계(玉溪) 유진산 등 정계 원로들이 야당의 지도자로 정치판을 좌지우지했다. 정치철학에 관계없이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한 이런 정치판을 바꿔보려는 것이 이른바 양김의 ‘40대 기수론’이었다. 진산이 이를 비꼬아 젖비랜내 난다며 구상유취(口尙乳臭)라고 조롱한 것이 노인정치의 절정이었다.
6·4지방선거 이후 386세대에 속하는 몇몇 도지사 당선자들이 대립과 반목을 청산하고 진정 국민을 위한 도정을 펴겠다며 여야 협치를 주장하는 것은 노인정치 청산이란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비록 지방정부이긴 하지만 ‘민주주의 학교’로 불리는 자치행정에서 여야 간 협력이 성공한다면 한국 정치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대와 달리 우리 여건이 노인정치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는 점이다. 바로 극심한 저출산 현상 때문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월드팩트북은 최근 올해 추정치 기준으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5명으로 분석 대상 224개국 중 219위를 차지했다고 최근 밝혔다. 머잖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하면 젊은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의미다.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과 노령층의 급증이 결합할 때 바야흐로 사회 전체가 노인을 위한 노인들만의 정치 지배 체제인 ‘제론토크라시’ 현상이 일어난다고 진단한다. 젊은층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려 해도 다수인 노인층이 결집해 이를 막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극심한 찬반 논란을 불러왔던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논쟁이 단적인 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은 표를 주는 사람에게 굽실댄다.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연금에 여야가 서둘러 합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세상이 내놓을 수 있는 맛들은 이미 다 맛보았다고 여기는 노인들이 사회를 이끌 수는 없다. 어차피 세상은 젊은이들이 이끌어야 한다. 이런 당위에도 불구하고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한마당-박병권] 노인정치
입력 2014-06-18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