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미디어는 우리 모두를 600만불 사나이와 원더우먼 같은 초능력자로 만든다.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월드컵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초능력에 한눈팔다 정작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목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는데 있다. 한 달간 운전 중 DMB 시청을 특별 단속한다는 경찰의 경고가 그 증거다.
나는 수업시간에 노트북을 포함해 일체의 전자기기를 끌 것을 주문한다. 필기나 숙제도 모두 손으로 쓰도록 한다. 감사하게도 이 때문에 강의 평가에 손해를 본 적은 없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하버드의 마이클 샌델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고 나만 유별 떠는 게 아님을 알았다. 수업 중에 문자를 주고받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는 학생들 때문에 골치를 앓다 내린 결정이었으리라.
우리나라 통신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저개발 국가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가도 불편을 느낄 정도다. 외국인들은 지하철에서 인터넷이 문제없이 되는 걸 보며 깜짝 놀란다. 최근 미국 CNN도 한국의 인터넷 보급률이 83%이고 10명 중 8명이 스마트폰을 쓴다며 경탄했다.
첨단 기술이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는 장밋빛 낙관론은 항상 그것이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로 인해 빛이 바래곤 한다. 분명한 것은 미디어 비판가인 닐 포스트만의 말처럼 기술이 주는 것이 있으면 빼앗아가는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글자가 기억력을 앗아갔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첨단 미디어가 가져온 가장 큰 문제는 과소비다. 스마트폰이 본격 공급된 후 2인 가구 월평균 통신비가 15만7579원(7%)으로 지난해 1분기 가계지출 중 의료비(5.8%)보다 비중이 더 높았다고 한다. 학비를 못 내 쩔쩔매는 아이들 가운데도 최신형 스마트폰을 쓰는 경우가 많다.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도 통신비를 못 내 대출하는 경우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시간낭비다. 출근시간 복잡한 지하철 속에서도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통화와 검색을 하다 통신기기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편리하고 유용해 손에 달고 사는 통신기기가 가장 위험한 도구일 수 있다. 돈과 시간 낭비만이 아니라 영혼을 망쳐놓을 수 있으니까. 자제력이나 분별력이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강력한 도구를 가진 바보는 여전히 바보일 뿐이다. 스마트폰이 정말 똑똑한 도구가 되려면 사용자가 현명해야만 한다. 첨단 통신기술의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오히려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으로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 때 인간은 고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잦은 통화와 이메일, 문자, 트위터, 페이스북 등 통신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정작 신경써야 할 소통은 꺼져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소통이 중요하다. 그러나 인격적 소통이 빠진 통신은 오히려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첨단 통신기술을 활용하느라 바빠 정말 필요한 영혼의 소통이 끊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삶의 진정한 위로와 평안은 영혼의 소통이 원활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닐까.
신국원 교수 (총신대 신학과)
[시온의 소리-신국원] 스마트미디어 시대의 지혜
입력 2014-06-18 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