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영화계는 ‘설국열차’로 들썩거렸다. 한국영화 역대 최대 제작비인 450억원이 든 대작, ‘살인의 추억’ ‘괴물’ 등 내놓는 작품마다 관객을 열광하게 했던 봉준호(45) 감독.
그와 운명적으로 만난 듯한 배우 송강호. 그리고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에반스와 개성 있는 명배우 틸다 스윈튼.
봉 감독이 할리우드 배우를 캐스팅해 만든 ‘한국영화’인 설국열차는 934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것은 물론,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이렇게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한국을 떠난 설국열차는 아직도 달리고 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 일본 이탈리아 등을 거쳐 오는 27일 가장 큰 시장인 북미개봉을 앞두고 있다. 설국열차가 해외 흥행에 성공하면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인터내셔널 무비’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프랑스·인도네시아·베트남에선 성공적=설국열차는 지난해 8월 1일 국내 개봉 전 이미 167개국에 선판매됐다. 그들은 고작 10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고 이 영화를 샀다.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제작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0만 달러가량(약 204억원)을 해외수출로만 벌어들였다. 가장 먼저 개봉된 국가는 프랑스. 지난해 10월 30일 개봉돼 약 3개월 동안 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67만8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프랑스 배급사인 와일드 사이드의 마뉘엘 쉬슈 대표는 “프랑스에서 개봉된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위험하다’는 영화의 주제가 프랑스 관객을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11개관에서 개봉해 8만3000여명을 동원했다. CJ의 직배 파트너사인 자이브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까닭에 영화가 인도네시아 최고의 체인망을 가진 21시네플렉스에서 상영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꽤 선전한 편이다.
자이브 엔터테인먼트의 루슬리 에디는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했던 한국영화 중 가장 좋은 성적”이라고 밝혔다.
코미디, 액션, 공포 장르가 강세인 베트남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23개관에서 상영해 3만4000여명이 들었다. CJ CGV 베트남 이정국 배급 매니저는 “베트남 시장은 ‘다크 나이트’ 시리즈처럼 분위기가 어두운 블록버스터가 실패하는 곳이다. 설국열차 역시 내용이 진지하고 주제가 무거워 염려를 많이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좋아서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도 7400만 위안(약 121억6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역대 중국 개봉 한국영화 중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최종 박스오피스 6686만 위안을 기록한 ‘만추’였다.
◇경쟁작과 날씨가 발목 잡아…대만·일본에선 기대 이하=대만은 설국열차가 개봉했던 지난해 12월 6일, 앞뒤로 경쟁작들이 만만치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와 무려 2억 대만달러(약 68억원)를 벌어들인 대만영화 ‘아름다움을 넘어서’, 할리우드 배우 폴 워커의 신작 ‘아워스’ 등 무려 세편이 ‘설국열차’를 가로 막았다.
일본은 날씨가 관객의 발목을 붙잡았다. 일본 배급사인 비터스엔드의 도모코 가게는 “영화 개봉일인 지난 2월 7일, 45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교통이 마비되면서 관객이 극장을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홍콩과 필리핀은 할리우드 영화를 주로 소비하는 시장. ‘설국열차’와 봉준호 감독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흥행이 쉽지 않았다.
◇미국에선 일단 작은 규모로 개봉=가장 관심을 모으는 미국 개봉은 오는 27일. 흥행 예측은 조심스럽다. 지난해 북미 지구 종말 콘셉트의 대작 영화 5∼6편이 모두 흥행에 실패한 전력이 있다. 설국열차는 1억5000만∼2억 달러가 들어간 블록버스터에 비하면 이들이 보기에 4000만 달러밖에 안 되는 ‘작은 영화’다. 일단 ‘롤 아웃’ 방식으로 개봉된다. 첫 주에 적은 숫자로 개봉해 관객 반응에 따라 스크린을 늘려가는 방식이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아직도 질주하는 ‘설국열차’… 한국영화 첫 ‘인터내셔널 무비’ 신화 쓰나
입력 2014-06-18 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