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ISIL “시아파 포로 1700여명 처형했다”

입력 2014-06-17 04:50
이라크 수니파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정부군과 시아파 자원입대자 등 1700여명의 포로를 처형했다고 주장하면서 두 종파 간 대규모 살육전이 현실화되고 있다.

◇1700명 살해 사실일 경우 근래 최악의 학살=ISIL이 자신들이 1700여명의 이라크군을 처형했다며 트위터에 수십장의 학살 사진을 올렸다고 외신들이 15일(현지시간) 일제히 전했다. ISIL이 장악한 티크리트 등 5곳 이상에서 찍힌 사진에는 수십명이 끌려가거나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이 담겼다. 또 젊은이들을 잔뜩 태운 트럭이 보였으며 사진설명에 '죽으러 가는 장면'이라고 적혔다.

이라크 군 당국은 학살 사실은 인정했으나 사망자 숫자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ISIL의 주장이 사실이면 시리아 정부군이 지난해 화학무기로 1400명의 반군을 살해한 것을 뛰어넘는 근래 최악의 학살로 기록될 전망이다.

ISIL은 포로 중 강제징집병은 풀어줬으나 시아파 자원입대자나 기존 정규군은 대부분 살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사진에 '수니파 제거를 위해 보내진 시아파의 운명'이라는 설명이 표기돼 있는 등 종파적 적대감 차원에서 이뤄진 살상임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이번 사진이 ISIL에 맞서는 이슬람 시아파의 보복 공격을 불러 이라크 내전의 성격을 대량 학살전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이라크 정부는 사진들이 시아파의 사기를 꺾기 위한 심리전 차원에서 활용되고 있다면서 자국 내 배포를 중단시켰다.

◇바그다드는 혼란, 쿠르드는 독립 노려=이라크 정부는 반격을 통해 수니파가 장악했던 7개 도시를 되찾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수도 바그다드 북부 100㎞ 지역에서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그다드공항에도 박격포 공격이 이뤄지는 등 700만명이 거주하는 수도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바그다드에선 식료품 가격이 배로 급등하는 등 시민들도 불안해하고 있다.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에는 해병대원 150명이 증파됐다.

이런 가운데 내전 위기를 틈 타 동북부의 쿠르드족 자치정부가 독립국 수립을 꿈꾸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쿠르드족 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축출되고서 2005년 자치권을 획득했으나 여전히 중앙정부의 통제가 심한 상태다. 특히 쿠르드족 지도자들은 이번에 이라크 정부군의 도주로 자신들이 장악한 키르쿠크 등을 이라크 정부에 반환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키르쿠크 지역은 석유가 풍부해 민족 간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등 이라크의 화약고로 불린다.

◇오바마, 이라크에 연립정부 구성 촉구하나=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에 연립정권(연정) 구성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NYT가 행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관료는 오바마 대통령이 조만간 이라크 지도자들에게 이런 뜻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미국은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 등 세 그룹이 골고루 이라크를 대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그는 부연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에도 알말리키 총리에게 수니파와 권력을 공유하라고 제안하려 했지만 실패한 적이 있어 연정 성사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미국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실정'을 부각시키며 총공세에 나섰다.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CNN에 출연해 "이라크전의 대실패가 이슬람 급진세력에 또 다른 9·11테러를 준비할 토대를 마련해줬다"고 비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병 550명이 탄 상륙수송함 'USS 메사 버디함'이 16일 이라크 인근 페르시아만(걸프해역)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항공모함 조지 HW 부시함과 합류해 미국이 군사작전에 나설 경우 지원하게 된다. AFP통신은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이 이라크 사태 해결을 위해 적대국인 이란과 협력할 수 있으며 무인기 드론을 활용한 공습도 "당연한 옵션"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