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본격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한 1990년대. 전국에 포진한 여중고생들은 똑같은 색깔의 우비를 맞춰 입고 풍선을 흔들며 오빠들의 이름을 외쳤다. 7만석가량의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흰색(HOT), 노란색(젝스키스), 하늘색(지오디) 풍선으로 채우겠다며 전국 각지에서 버스까지 대절해 모였다.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사생팬(스타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팬)’이 조직된 것도 이 때다. 앨범 발매날이나 콘서트 일정이 있을 때마다 학교 밖을 나가는 ‘오빠 부대’를 잠재우기 위해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가수들의 일정을 일일이 챙기는 촌극도 벌어졌다.
◇올여름 반가운 ‘오빠’들의 귀환=이 ‘오빠 부대’가 다시 모이는 날이 멀지 않았다. 그룹 지오디(god·멤버 박준형 손호영 데니안 윤계상) 가 다음달 데뷔 15주년을 맞아 팬들 곁으로 돌아온다. 12년만에 멤버 윤계상이 합류해 정규 8집 앨범을 내놓는 것. 지난달 8일 선공개된 곡 ‘미운오리새끼’가 발매 직후 국내 음원사이트 차트 1위 자리에 오르면서 전성기 때 버금가는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다음달 12∼13일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2회로 예정됐던 서울 콘서트도 3만석이 30분만에 매진됐다. 싸이더스HQ측은 지난 16일 “팬들의 요청에 따라 광주, 부산, 대구, 대전 등 추가 전국 투어 공연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5년 만에 재결합한 플라이 투 더 스카이(멤버 환희 브라이언)의 인기는 대중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정규 9집 앨범 ‘컨티뉴엄(Continuum)’으로 지난달 컴백한 이들은 온라인 음원차트 순위권에 줄 세우기를 하고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 지난 6∼8일 서울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고 다음달엔 대전, 경기, 부산 콘서트 투어도 계획돼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교주’란 별명으로 통하는 가수 신해철도 오는 26일 7년 만에 솔로 정규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매하면서 화려하게 컴백한다. 17일 선공개된 ‘A.D.D.A’는 1000번 이상의 녹음을 통해 모든 악기 소리를 자신의 목소리로 구현해 낸 원맨 아카펠라 형식. 소울, 펑크, 디스코, 라틴, 재즈 등 여러 장르가 섞인 실험적인 곡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올 하반기 자신이 속한 그룹 넥스트로도 컴백을 예고했다.
◇중견 가수들의 잇단 컴백…스펙트럼 넓어진 가요계=김추자, 이상은, 이선희, 이은미, 이승환, 임창정, 조성모…. 올 상반기 가요계에 컴백했던 중견 가수들이다. 중견 가수들의 컴백과 상승세는 또 다른 가수들의 컴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일정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데뷔 28주년을 맞은 ‘한국의 마돈나’ 김완선, ‘명품 발라더’ 윤상도 이번 여름 각각 2년, 5년 만에 신보를 내놓는다. 하반기에는 3년 만에 돌아오는 김건모와 6년 만에 돌아오는 서태지 등 쟁쟁한 라인업이 기다리고 있다. 서태지의 경우 오는 10월 새 앨범과 함께 단독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팬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컴백이 대중음악계 산업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는 “현재 대중음악계가 장르적으로는 점차 다양해져가고 있지만 전 세대를 포괄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3040세대, 80∼90년대 생들이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음악들을 찾아 들을 수 있다는 점, 대중음악에 관심을 놓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중견 가수들의 귀환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뮤지션들이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가 함께 시장을 만들어가는 구조가 온다면 좋을 것”이라며 “옛 인기만을 따르기보다 새로운 시도로 질 좋은 음악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플라이 투 더 스카이·지오디·신해철·윤상… 90년대 가수 컴백 ‘붐’
입력 2014-06-18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