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읽기] 재발 두려움 안고 사는 암환자들

입력 2014-06-17 02:16

“의사로부터 재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실감이 너무 컸어요.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뎌냈는데 또 암이라니… 신이 내게 너무도 가혹하다는 생각에 눈물도 안 나오더군요. 가족들에게 재발됐다는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얘기도 못했어요. 너무 미안했거든요. 환자만큼 힘든 게 보호자잖아요. ‘나는 죽어야 하는 팔자인가보다’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죠.”

뼈 전이 후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다는 유방암 환자 김수정(가명·45)씨는 ‘재발’이라는 두 단어가 주는 좌절감에 한동안 바깥세상과의 인연을 모두 단절했다고 말한다.

여느 날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다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함께 막막함이 밀려온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누굴 찾아가야 할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재발됐을 때의 감정은 이와 조금 다르다. 완치됐다는 안도감이 송두리째 무너졌을 때 찾아오는 좌절감은 심각한 정서적 불안을 초래한다. 김종흔 국립암센터 정신건강클리닉 교수는 “환자는 ‘선생님이 제대로 된 치료를 게을리 했다’ 혹은 ‘병원을 믿었는데 배반당했다’라면서 의료인에게 노여워하는 수가 있다. 솟구치는 분노,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발하지 않은 채 완치의 삶을 살고 있는 전(前) 암환자의 삶도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죽을 만큼 힘든 암 치료과정을 이겨냈다는 승리감보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재발에 대한 걱정에 괴로워한다. 가벼운 신체증상만 나타나도 암이 재발된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떨고 이차적 암 발생과 신체적 후유증에 대한 염려가 많다. 정기적으로 추적 검사를 받는 날이 가까워오면 불안해지고 잠을 설치기도 한다.

“두려워요. 평온한 날을 보내다가도 혹시 의사가 발견하지 못한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어느 순간 불안감이 커져요. 한 번 두려움이 엄습해 오면 쉽게 벗어날 수가 없어요.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함도 오래 가지 않죠. 완치되면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할 것 같지만, 여전히 ‘암환자였다’는 꼬리표를 달고 환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다 보면 재발의 두려움 속에 극단적인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번 넘나들죠.”

위암 완치 후 자살률이 높다는 연구보고는 암 이후의 삶이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김종흔 교수는 생존자들은 시간이 흘러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재발·죽음에 대한 공포심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암 생존자가 처한 이런 상황은 칼이 머리 위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다모클레스의 칼’로 비유되기도 한다. 암 치료로 인한 인지기능의 장애, 성 기능 문제 및 불임, 만성 피로, 외모의 변화 등의 후유증 때문에 대인관계 적응이 힘든 경우도 있다. 또한 경제적 문제, 직장 복귀 문제 등의 현실적인 일들도 헤쳐 나가기 힘겹다”고 말했다. 앞선 사례처럼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는다고 암환자의 치료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암 생존자 110만명을 넘어선 지금, 그들을 위한 의료서비스 체계가 필요한 때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