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를 책정하는 방식에 대해 대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7월 꾸려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은 지난 13일 복잡한 현행 부과 방식 대신 '소득'으로만 건보료를 산정하는 개선안을 내놓았다. 160가지 대안을 놓고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거친 결과 '모든 가입자의 소득(퇴직·연금소득은 25%, 양도소득은 50% 적용)에 대해 현행(5.89%)보다 낮은 보험료율(5.7956%)을 적용하는' 안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가입자의 72%는 보험료가 내려간다. 고소득자 중심으로 28%만 보험료가 오른다. 그래도 건강보험 규모(38조4140억원)는 올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내 건강보험료 어떻게 되나=건보료 책정 방식이 이렇게 '소득' 기준으로 단일화될 경우 돈벌이가 월급뿐인 대다수 직장가입자는 보험료가 약간 내려간다. 보험료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 소득이 없거나 적은 지역가입자, 퇴직 전보다 소득이 적거나 없어졌는데도 재산 때문에 오히려 건보료가 올랐던 은퇴자 등은 건강보험에 내야 할 돈이 큰 폭으로 줄어든다. 개선안에는 '기본보험료(8240원)'를 새로 만들었다. 소득이 전혀 없는 지역가입자에게 적용되는 보험료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해 정해진 월소득이 없는 강모(45·여)씨는 그동안 매달 1만7780원을 건보료로 내야 했다. 강씨와 고교생 딸(17)이 올릴 수 있다고 예상되는 가상의 소득을 감안한 생활수준점수(81점)에 전세보증금 899만원의 재산점수(22점)를 더하고 여기에 기본금액 172.7원을 곱한 값이다. 이렇게 복잡한 계산을 거쳐 강씨는 실제 소득이 거의 없는데도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소득'을 중시하는 개선안이 적용되면 강씨는 앞으로 기본보험료 8240원만 내면 된다.
직장가입자였다가 퇴직 후 지역가입자가 된 도모(61)씨 경우는 불합리한 상황에서 구제된다. 도씨는 퇴직 전 월급 350만원을 받았고 건보료는 월 10만3070원을 냈다. 퇴직 후 복잡한 지역가입자 소득계산식에 따라 건보료가 월 18만6680원으로 올랐다. 작은 사업을 시작해 각종 경비를 빼고 실제 소득은 연간 540만원뿐인데도 집과 자동차(2010년식 쏘나타)가 소득으로 간주돼 건보료를 더 많이 내야 했다. 하지만 건보료 부과 기준이 소득으로 바뀌면 도씨는 월 2만6080원만 내면 된다.
보험료가 오르는 사람도 있다. 직장가입자 중 별도 소득이 있는 경우다. 대부분 고소득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월급 2750만원인 직장가입자 박모(45)씨는 은행 이자 등으로 연간 6952만원을 더 번다. 지금은 매달 80만9870원을 건보료로 내지만 개선안대로라면 금융소득에 대한 건보료가 추가돼 113만2640원을 내야 한다.
보험료를 내지 않던 피부양자 2022만명 중 소득이 있는 556만명은 건보료를 내야 한다. 연간 이자 수익 등으로 1355만원씩 벌고 4억6000만원짜리 건물을 갖고 있으며 벤츠를 몰고 다니는 주부 신모(52·여)씨가 지금 내는 건보료는 '0원'이다. 직장가입자인 아들의 피부양자여서다. 하지만 금융소득에 건보료를 매기게 되면 신씨는 피부양자 자격을 잃는다.
◇가입자 불평등 해소 차원…정부 입장은 '신중' 혹은 '미온적'=직장·지역 가입자 모두 소득만으로 건보료를 부과토록 바꾸려는 건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다. 직장가입자는 '투명한' 월급에 따라 부과되지만 지역가입자는 집이나 자동차 같은 '재산'이 보험료를 좌우한다. 이런 재산은 그 가치가 예전보다 많이 떨어져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정부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기획단이 발족했는데 1년 가까이 회의는 7차례 열렸을 뿐이다. 향후 계획도 "9월까지 기획단의 개선안을 확정하겠다"는 것 말고는 정해진 게 없다. 보건복지부 고득영 보험정책과장은 "건강보험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어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소득만으로 건보료를 매길지, 단계적으로 바꿔 나갈지 전혀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고소득자인 여론 주도층의 반발을 우려해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는 "해외 사례를 봐도 건강보험료는 소득 중심으로 부과하고 있다"며 "소득 파악이 지금처럼 투명해진 시점에선 부과체계를 바꿔나가는 게 형평성과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퇴직 후 연소득 540만원일 때, 건강보험료 月 18만6680원→2만6080원
입력 2014-06-17 0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