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전달한다. 산림청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의 산이 만들어진 역사를 소설로 이야기하는 이유다.”(소설 ‘그 숲에 살다’ 작가).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점에서 법관과 소설가는 닮았다. 양쪽 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텍스트와 기술을 압도한다.”(소설 ‘보헤미안 랩소디’ 작가).
은퇴 공무원에서 현직 판사까지 전문직 종사자들이 잇달아 업무 경험을 담은 소설을 출간해 문학계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있다.
◇전문적인 경험을 담다=“도벌꾼들이 들어간 계곡은 무주 구천동 소재지에서 3㎞ 이상 떨어진 덕유산 향적봉 부근이다. 예비군 대원에게는 M1 소총이 지급됐고 경찰관에게는 칼빈소총과 공포탄이 지급됐다. (중략) 천신만고 끝에 도벌꾼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 200∼300여m 정도까지 다가갔다.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던 그들이 토벌대를 보고 뛰기 시작했다.”
지난 주 출간된 산림소설 ‘그 숲에 살다’ 속 임정식이란 인물이 주인공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이 에피소드는 산림청에서 은퇴한 작가 이용직이 입사 2년차였던 1968년 12월 전북 덕유산에서 직접 경험한 것이다. 소설 속 임정식이 바로 작가 이용직인 셈이다. 당시 덕유산엔 목기(木器) 제작을 위해 나무를 벌목하는 도벌꾼들이 출몰했다. 이 작가는 추격전 끝에 허리까지 차 있던 눈을 파 몸을 숨긴 도벌꾼 4명을 잡았다. 작가가 소설로 풀지 않았다면 결코 세상에 알려지지 못할 이야기였다.
이 작가처럼 전문직 종사자들이 소설을 쓴 경우는 많다. 올해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지난달 출간된 ‘보헤미안 랩소디’ 작가는 4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현직 판사다. 정 작가는 앞서 2010년엔 ‘소설 이사부’로 제1회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1월에 나온 ‘소행성 내려오던 밤’은 국내 과학자가 쓴 최초의 SF소설이라는 점에서 유명세를 탔다. 작가 최정암은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최인호 교수다.
최근 수년 사이에도 이은 미술학 박사가 ‘박 회장의 그림창고’, 장현도 금융 전문가가 ‘트레이더 1, 2’를 내놨다. 범죄 추리 소설 ‘나비사냥’과 ‘어둠의 변호사’도 각각 현직 강력팀 형사인 박영광, 지방법원 부장 판사인 도진기가 썼다.
◇다양성 vs 질 저하 우려=과거 전문직 종사자들이 수필집과 시집을 내는 경우는 많았지만 소설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16일 “수필은 경험을, 시는 생각을 풀어내면 되지만 소설은 다르다”면서 “많은 생각과 시간, 다듬는 과정 등 복합적인 작업을 거쳐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소설 출간 붐에 대해 문학계에선 긍정과 부정의 시각이 교차한다. 일단 자신의 직무 경험을 살렸다는 점에서 소재가 풍성해짐에는 긍정적이다. 소설가 홍성암은 ‘그 숲에 살다’를 두고 “(작가가) 산이 생명의 근원이고 숲이 영혼의 안식처라는 깊은 성찰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구효서는 ‘보헤미안 랩소디’ 추천사에서 “정신분석학을 이야기에 끌어들였다는 점이 이 소설의 인상을 강렬하게 한다”고 평했다.
하지만 문학평론가 홍정선 인하대 교수는 “한국의 소설 수준을 아마추어화 시켰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좀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기획] “이야기, 아는 만큼 쓴다” 전문직 장르소설 기지개 켜나
입력 2014-06-17 0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