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신앙의 복원력이 있습니까

입력 2014-06-17 02:05

요즘 우리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복원력’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세월호의 복원력이 정상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배의 복원력은 심하게 기울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놀라운 복원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약속의 성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단의 끊임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복원력으로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이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 복원 과정을 보면 우리의 인식과 방법을 초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말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원래 이 여인은 야곱의 아들이자 유다 지파의 원조인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성경의 족보 가운에 유다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아들 가운데 그를 통해 메시아의 계보를 이을 계획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창 49:10).

그런 유다에게 세 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이 아들들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습니다. 다말이라는 이 여인은 유다의 큰아들 엘과 결혼하였으나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창 38:7). 엘이 죽자 형사취수의 규범에 따라 그 동생 오난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아내가 된 다말에게서 아들을 얻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오난을 죽이셨습니다. 오난도 죽게 되자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는 것을 주저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다말은 자기 시아버지 유다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낳을 계략을 세웠습니다. 유다는 아내가 죽자 적적하여 위로받을 길을 찾다가 딤나라는 곳으로 내려가 창녀를 찾아가는 행동을 보입니다. 이미 유다와 그의 집안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 몰락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다말의 소망은 유다의 가문에 대를 잇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소망은 자신이 살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당연한 욕구였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곧 하나님이 자기 약속을 이루는 방법이었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의 행동방향을 잘 알고 있었던 고로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씨를 받아 쌍둥이로 베레스와 셀라를 낳았습니다. 유다가 아내의 죽음 이후 적적하여 창녀를 찾은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유다의 행동이나 다말의 행동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둘 다 옳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욕구를 통해 약속을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말에게 아들을 얻고자 하는 그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붙들고 이루도록 하심으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혼란과 교회의 어려움 앞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인내하고 사는 이상, 결국 하나님의 교회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약속하신 말씀이라는 반석 위에 서 있는 교회의 복원력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의 소망 없음과 한국교회의 추락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며 우리의 나태해진 신앙을 복원해야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박태천 의왕 한소망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