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문창극이 식민사관 소유자?

입력 2014-06-17 02:33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호된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다. 자기가 평생 몸 바쳤던 언론으로부터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난타당하고 있다. 식민사관을 불러온 강연과 칼럼 등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했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필자는 그의 총리 지명 소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용케도 참 좋은 사람을 골랐다는 생각과 함께 미상불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가 총리가 돼서도 성격대로 지금까지의 강직한 자세를 유지할 경우 여기저기 부딪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 걱정이었고, 자세를 낮출 경우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총리가 되고 말 것이 걱정이었다.

필자가 아는 문 후보자는 소신과 다른 말을 하거나 에둘러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사람이다. 해서 그가 총리가 되면 우선 청와대와 부딪쳐 부러지지 않을까 성급한 걱정을 했다.

그의 보수 성향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들에 대한 비판적 칼럼 때문에 야권으로부터의 세찬 공격은 예상된 일이었다. 임명과정에 특별히 다른 장애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곧바로 언론의 서슬 퍼런 검증의 틀에 얹혔다. 책임총리제에 대한 기자 질문에 “처음 듣는 얘기”라고 답변했다. 그가 근자에 최대의 화두와 국민적 요구가 된 책임총리제의 의미를 몰랐을 리 없다. 그 파문이 심상치 않을 터인데 저렇게밖에 답변할 수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약과였다. 잇달아 교회에서의 강연 내용이 식민사관 논란을 불러왔다. 진보진영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까지 사퇴 압력에 가세했다. 일제의 식민지배, 남북분단과 전쟁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게 문제의 강연 요지였다. 잘못된 역사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듣기에 따라 오욕의 역사, 일제의 침탈에까지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비쳐 국민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는 해석이다.

필자는 판단을 돕기 위해 강연 내용 전문을 읽어봤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식민지배와 한국전쟁과 같은 고난과 시련을 주셨고, 시련을 거쳐 다시 기회를 주셨으며, 이를 통한 민족의 각성으로 지금처럼 잘사는 나라로 축복해주셨다는 것이 요지였다. 불행한 역사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는 것은 그것들을 정당화한다기보다 궂은일에도 좋은 일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기독교의 세계관에 입각한 것이다. 이 땅에서 저질러지는 죄악까지도 하나님의 뜻이냐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또 강연 내용에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이 없진 않다. 하나 얼치기 예수쟁이인 필자로서는 큰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었다.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불행에 대해 죄과에 대한 업보라는 말은 흔히 쓴다. 또 조선 망국 후 안창호 등 많은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우리의 잘못을 자책하며 민족 개조를 외쳤다는 점과도 맥을 같이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순 없을까 생각해 봤다. 일본의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위안부 발언에 대해선 국민정서와 정부 방침에 반하고, 필자와는 생각이 다르며, 그 자신도 공식 사과했기 때문에 말을 보태지 않겠다.

필자는 그의 많은 글과 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목들이 없지 않으나, 식민사관보다는 국가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관통함을 느낀다. 논란이 제기됐을 때 그가 대응을 청문회로 미루기보다는 바로바로 강연 내용 전문 공개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적극 해명을 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살펴봤다면 파문을 다소는 줄였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 후보자에 대해선 문제가 된 역사관이나 책임총리제 외에도 따져봐야 할 게 많다.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의 임명 여부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문 후보자도 청문회에서 모든 걸 밝히겠다고 했다. 청문회 위원장에 내정된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지원 의원도 그의 낙마를 벼른다. 청문회에서 우격다짐이 아니라 충분히 추궁할 건 추궁하고 해명할 건 해명한 뒤 국민과 의원들의 판단을 구했으면 좋겠다.

백화종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