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서환 (11) 갑작스런 대기발령… ‘위기는 기회’ 새 인생 준비를

입력 2014-06-17 03:25
2008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을 소개하는 조서환 대표(등 보인 사람).

2008년 KTF 부사장 시절 나는 인생의 정점을 달리고 있었다. 저서 ‘모티베이터’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일간지에 인터뷰 기사도 크게 실렸다. 어디 이뿐인가.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뒤 각종 TV와 라디오 출연 제의가 쇄도했다. 여기저기서 최고경영자 과정 강의를 부탁하기도 했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했다.

그런데 2009년 초 KT와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고위직이던 나는 예감이 썩 좋지 않았다. ‘설마 나 같은 유명인사를 어떻게 하겠어?’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회사는 보직을 주지 않고 ‘연구위원’으로 대기발령을 냈다. 2007년부터 2년간 내 업적은 창사 이래 전무후무한 최고의 성과였다. 그런데도 1년간 매달 월급을 줄 테니 일하지 말고 놀면서 대기하라는 것이다. 나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나는 노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갑자기 놀자니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안 놀고 오히려 더 바쁘게 살기로 했다. 아내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보살필 거야. 걱정 말고 하나님께 맡기세요.’ 아내 기도에 힘입은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마케팅’ 할지 고민했다. 남이 알아줄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지인에게 터놓고 알릴 것인지를 두고 선택해야 했다.

나는 스스로 알리는 편을 택했다. 우선 내가 설립한 ‘아시아태평양마케팅포럼’에 내 상황을 알렸다. 역발상 마케팅의 효과는 매우 컸다. 많은 회사에서 CEO 영입 제의가 들어왔고 밤낮으로 기업에서 특강 및 컨설팅 요청이 들어왔다. 매사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보살핀다는 아내의 말이 맞는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던 대기발령 때 오히려 나는 가장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묘했다. 세상을 겁내지 않고 담대하게 돌진하면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크게 깨달았다.

대기발령 후 50대 중반인 나는 인생 2모작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대학교수로 갈까? 교육사업을 할까? 마케팅 컨설팅 회사를 경영할까?’ 결국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글로벌 마케팅을 꿈꾸던 나는 전 세계 72개국에 진출해 있는 세라젬 그룹의 러브콜을 받아들여 화장품 사업을 하기로 했다. 갈 길을 굳힌 나는 2009년 10월 KT에 등기 속달로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이튿날 세라젬에 입사해 3개월 만에 중국과 한국에 각각 회사를 설립했다.

한 기자가 인터뷰 도중 들려준 호박벌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여름 호박벌은 일주일에 1600㎞를 난다. 하지만 호박벌은 태생적으로 날 수 없는 신체구조다. 몸통은 뚱뚱한 데다 날개는 너무 짧고 얇아서 공기 저항을 이겨낼 수 없어서다. 그런데 호박벌은 날 수 없게끔 태어났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오로지 꿀 따는 것만 집중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문득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시골에서 태어나 돈도, 배경도 없이 오로지 호박벌처럼 목표를 세운 뒤 쉬지 않고 뛰었다. 내 환경은 일류로 살기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처지를 무시한 채 오로지 초일류로 살겠다는 흔들림 없는 목표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됐다. 미물도 목표가 뚜렷하게 있는데 어찌 사람이 목표 없이 성공할 수 있을까.

여행할 때 행선지를 뚜렷하게 정해야 목적지에 이르듯 인생도 목표가 있어야 제대로 살 수 있다. 목표가 있어야 항해할 때 겪는 거친 풍랑과 고난을 극복할 힘이 생긴다. 따라서 직장 후배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선 분명한 자기만의 인생목표를 세우고 전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절반은 성공한다. 아니 이미 성공한 것처럼 즐겁게 살 수 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