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고령화 시대’ 지구촌은 지금 연금 홍역

입력 2014-06-17 02:42

세계 곳곳에서 연금 문제로 시끄럽다. 급속한 고령화로 은퇴 인구가 빠르게 늘어 연금 혜택의 전반적인 감소와 적립금 고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공적연금이든 사적연금이든 투자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 리스크를 높이는 쪽으로 연금제도를 뜯어고치고 있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퇴직 후 연금 수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셈이다.

◇일본 공적연금 대대적 개편 임박=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투자위원회의 요네자와 야스히로 위원장은 지난 10일 “주식과 해외채권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GPIF 개편안이 오는 9월이나 10월쯤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GPIF는 총자산이 1조2920억 달러(1316조5500억원)로 세계 최대 연기금이다. 자산 규모는 방대하지만 최근 10년간 수익률은 3.16%로 주요국 연기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자산의 채권 투자 비중이 71%로 다른 연기금에 비해 크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은 것으로 지적된다.

요네자와 위원장이 밝힌 잠정 개편안에 따르면 GPIF의 자국채권 투자 비중이 현행 60%에서 40%로 줄고 주식 투자 비중은 24%에서 34%(국내주식 17%, 해외주식 17%)로 확대될 전망이다. 기존의 위험 회피 성향에서 벗어나 펀드 수익률을 높이고 주식시장도 활성화시키는 것이 개편안의 목적이다. 막대한 공적연금을 ‘아베노믹스’에 활용하려는 아베 신조 정권의 압력에 따른 조치다.

그러나 퇴직 후 안정적인 연금 수령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줄 수 있다는 비판론도 나온다. 오쓰마여대의 다마키 노부스케 교수는 “GPIF는 단기적 정책 목표를 위해 꺼내 쓸 수 있는 돼지저금통이 아니기 때문에 자산시장에서 단기 개입 도구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타니 다카히로 GPIF 이사장도 “GPIF의 운용 목적은 주가 상승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돈을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보호·관리하는 데 있다”며 개편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 같은 비판론에 대해 요네자와 위원장은 “아베노믹스가 없었을 때는 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좋지 않았지만 최근 일본 경제는 달라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자산 규모 세계 4위인 한국의 국민연금도 안정적인 투자 대상인 채권 비중을 줄이고 주식 비중을 키우는 쪽으로 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현재 30.1%인 주식 비중을 앞으로 5년간 35%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채권 비중은 60.4%에서 55% 미만으로 줄이는 안을 의결했다. 국민연금은 2003∼2012년 평균 수익률이 6.29%에 달하지만 지난해 수익률은 4.16%에 그쳤다.

◇영국 퇴직연금 방식 논란=지난 4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의회 연설에서 네덜란드식 공동출자형 퇴직연금 모델을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연금 관련 논란이 뜨겁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여왕이 의회에서 밝힌 것은 영국 정부의 주요 입법계획이다. 이 중 연금개혁 부분에서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확대가 강조됐다.

영국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네덜란드식 공동출자형 퇴직연금 모델은 DC형의 일종이다. 현재 영국에 일반적인 확정급여(DB)형에 비해 가입자의 리스크가 크다. DB형은 회사가 퇴직자에게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인 반면 DC형은 회사가 정해진 적립금만 금융사에 맡기고 나머지를 퇴직자가 굴리기 때문에 자금운용 능력에 따라 수령액이 달라진다. DB형만큼 연금 지급이 보장되지 않고 퇴직자 본인이 투자에 실패하면 수령액이 깎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DB형이 많은데 DB형의 수익률이 계속 바닥을 치고 있어 DC형을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FT에 따르면 네덜란드식 DC 모델 도입에 반대하는 쪽에선 “기업들은 정부가 나중에 회사의 적립금을 높이도록 강제할 것을 우려해 이 모델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최대 연기금 관계자는 “회사가 DB형 운용으로 인한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면 리스크를 공유하는 네덜란드식 모델이 가장 적절한 대안”이라며 “왜 영국에서 이 모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영국에선 DC형 퇴직연금을 일시불로 수령할 경우 고율(55%)의 세금을 매겨왔지만 이번 연금개혁안에선 세율을 20%로 낮췄다. 이에 따라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401K 적립금 감소 전망=미국에선 DC형 퇴직연금인 401K의 연간 순유출입이 2016년부터 마이너스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2년 미국 근로자들이 401K에 납입한 금액은 3000억 달러, 인출한 액수는 2760억 달러였다. 하지만 미국 리서치 업체 ‘세룰리 어소시에이츠’는 2016년에 납입액 3640억 달러, 인출액 3660억 달러로 역전될 것으로 추정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면서 연금 지급액이 급증해 2016년부터 적립금이 감소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401K 적립금은 1990년 385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모든 근로자가 401K에 자동 가입되도록 제도를 바꾼 뒤 급증해 2012년 3조6000억 달러로 확대됐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여파로 적립금이 감소하면 그만큼 자산운용 규모도 줄어 주식시장과 자산운용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세룰리 어소시에이츠 관계자는 “401K 캐시플로의 마이너스 전환은 DC형 퇴직연금 시장에 공을 들여온 펀드 매니저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선 연금제도 불만 시위=지난 7일 싱가포르 홍림공원에선 2000여명이 정부의 부적절한 연금제도 운용 의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의 사회통제가 엄격한 싱가포르에선 이례적인 ‘대규모 시위’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연금제의 투명성 부족을 비난하면서 퇴직 후 수급에 대한 불안감도 표출했다.

최근 한 경제전문 블로거가 싱가포르의 국민연금 격인 중앙연금준비기금(CPF)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올리면서 이 문제가 국민적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블로거의 글은 리셴룽 총리가 CPF를 운용하면서 기금을 횡령하는 등 자금 운용이 투명하지 못하고 수익률도 너무 낮아 의구심이 든다는 내용이었다. 리 총리는 이 블로거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현지의 저명한 여류 소설가 캐서린 림은 “국민이 더 이상 지도자를 믿지 않는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리 총리에게 보냈다.

정부가 CPF 최소금액 기준을 높인 것도 국민들의 불만을 샀다. 55세부터 CPF에서 돈을 뺄 수 있는데 최소금액을 남겨놔야 하고 60∼65세가 되면 이 최소금액에서 매월 일정액을 찾아 쓸 수 있다. 2003년 8만 달러였던 최소금액은 다음달부터 15만5000달러까지 오른다. 가입자로서는 미리 타 쓸 수 있는 목돈이 줄어든 셈이다.

연금 개혁 논쟁에 대해 유진 탄 싱가포르경영대 부교수는 “CPF에 열심히 부어온 돈을 퇴직 후에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사람들의 걱정이 곪아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