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빚을 갚아야 합니다.”
지난 13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하반기 전략발표회에서 회사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한컴 이홍구 대표이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1990년 설립된 한컴은 익히 알려진 한글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을 만든 회사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MS오피스로 전 세계 사무실을 장악할 때 우리나라는 아래아한글이 이를 막았다.
90년대 후반 한글과컴퓨터가 어려움에 빠지고 MS가 200억원을 제안하며 워드프로세서 개발을 중단하라고 유혹할 때, 국민들은 한컴 지키기를 자처하며 ‘한글 815 특별판’을 앞 다퉈 구매하기도 했다. 어느 기업보다 국민과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것이 한컴의 특징이다. MS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어 오피스(MS오피스의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에 해당) 프로그램을 보유했다는 자부심도 있다. MS의 공세에도 한컴은 20% 정도의 점유율을 지키며 토종 제품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컴은 다시 한 번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은 문서작업을 한 뒤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MS도 사티아 나델라가 취임한 후 ‘모바일, 클라우드 우선’ 정책을 펼치며 MS오피스를 모바일로 빠르게 이식하고 있다.
한컴은 글로벌 시장에서 이들과 경쟁하겠다는 당찬 목표를 설정했다. 이 대표는 “솔직히 해외시장에서 구글이나 MS를 이길 자신은 없다”면서도 “그래도 글로벌 진출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체를 놓고 보면 어렵지만 구글과 MS에 거부감이 있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대표는 “이들에게 종속되는 걸 우려하는 기업이나 정부의 수요가 있다”면서 “특히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쪽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컴의 전략은 오피스 제품군을 강화하고 클라우드 플랫폼까지 함께 진출하는 것이다. 오피스 제품은 차세대 웹표준 언어인 HTML5를 사용하고, 클라우드 기반으로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 오피스 제품 외에 사진 편집 등 다른 기능까지 통합한 오피스 제품 ‘넷피스’도 내년 상반기 중으로 출시한다. 클라우드는 한컴 제품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 연동할 수 있도록 하며 ‘한컴 큐브’라는 이름으로 선보인다.
지난해 688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한컴은 해외 진출을 성공적으로 해 2023년에는 매출 1조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도 나설 계획이다. 한컴은 지난 5월 솔루션 전문업체인 MDS테크놀로지를 395억원에 인수했다. 이 대표는 “제2, 제3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찾아나갈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글로벌 IT 혁신 기업으로 자리 잡아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제주=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한글과컴퓨터 이홍구 대표, “해외진출 성공해 국민께 빚 갚을 것”
입력 2014-06-16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