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축제와 추모… 흥 안나는 월드컵

입력 2014-06-16 02:52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브라질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우리나라 첫 경기는 18일 오전 7시(한국시간)에 열린다.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는 선에서 축제를 즐기자는 목소리가 높다.

◇즐기자 월드컵, 잊지 말자 세월호=축구 국가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는 18일 오전 7시 러시아전, 23일 오전 4시 알제리전, 27일 오전 5시 벨기에전 등 한국팀 경기의 거리응원전을 모두 광화문광장에서 벌이기로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과거 월드컵에선 시청 앞 서울광장이 응원무대였지만 올해는 서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설치돼 있어 추모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장소를 바꿨다. 붉은악마는 응원전 슬로건도 ‘즐기자 월드컵, 잊지 말자 세월호’로 정했다.

원래 18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선 다른 단체의 전통문화 체험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서울시 승인까지 받은 이 행사 주최 측이 세월호 분향소를 침범하지 않으려는 붉은악마를 위해 양보하면서 광화문광장이 월드컵 응원무대로 확정됐다. 광화문광장 수용 인원은 약 2만명에 불과하다. 기존의 서울광장 응원전만큼 많은 인원이 모이지는 못할 전망이다.

당초 거리응원 개최 여부를 놓고도 논란이 있었지만 지난 11일 세월호 피해가족대책위원회가 붉은악마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일단락됐다. 세월호 유가족 대표인 유경근씨는 “국가적 차원의 축제에서 우리 때문에 응원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붉은악마 관계자들께 ‘걱정해주시는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유씨는 “다만 월드컵이 끝나면 세월호 참사가 잊혀질까 걱정”이라며 “우리를 잊지만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튀니지 축구 대표팀 평가전에서 붉은악마는 경기 시작 직후 16분간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침묵응원’을 했다. 러시아전에서는 침묵응원 대신 색다른 추모 행사를 준비했다. 반우용 붉은악마 운영위원장은 “서울과 부산, 브라질 현지에서 대형 풍선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담아 올려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학들도 “올해는 조용히”=스포츠 축제마다 대형 스크린을 빌려 떠들썩한 거리응원을 해왔던 대학들도 이번 월드컵에선 과도한 응원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서울시내 주요 대학들은 예정했던 교내 응원전을 대부분 취소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교내 연례 축제를 취소한 데 이어 월드컵 응원전도 펼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예나 부총학생회장은 “단과대나 동아리 차원에서 소규모로 진행하는 응원전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전 학생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는 자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세대 총학생회도 월드컵 관련 행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경기 시간대가 여럿이 같이 보기에 애매한 점도 걸림돌”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