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과거 씻고 노숙인 위해 요리하는 전과 3범 이원구씨

입력 2014-06-16 02:44
무려 26년이나 철창신세를 졌다. 인생의 거의 절반을, 그것도 황금기간을 영어(囹圄)의 몸으로 살았다. 전과 3범의 이원구(57)씨. 코흘리개 시절 아버지를 여의면서 그의 불행이 싹텄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사흘 만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꿈 많은 16세 때 사회로 내몰렸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날품을 팔아야 했다. 거친 사회는 청소년이 넘지 못할 거대한 성채였다. 절망을 느낄 때마다 술독에 빠졌다. 술을 마셨다기보다는 들이부었다.

기어코 술이 발목을 잡았다. 1984년 4월 만취한 이씨는 강도 누명을 썼다. 식당 동료가 자신의 강도 혐의를 이씨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변변하게 변호 한번 못하고 철창에 갇혔다. 출소하면서 교도소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도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다. 새로 취업한 식당 주인이 세 달 치 임금을 주지 않았다. 이씨는 주방에 있는 흉기를 들고 주인을 위협했다. 비록 행동은 거칠었지만 밀린 임금을 받아내기 위한 할리우드 액션이었다. 법원은 강도 전과가 있는 이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98년에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함께 술을 마시던 여성이 놀리자 화를 참지 못하고 목을 졸랐다. 평생 용서를 빌어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15년의 옥살이가 시작됐다.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 불현듯 20대 초반에 동료를 따라간 교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믿는 사람들끼리 수감생활을 하는 종교방으로 옮겨 달라고 간청했다.

이때부터 이씨의 삶은 서서히 달라졌다. 수인(囚人)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는 어색했지만 성경을 읽을 때면 불안한 마음이 가셨다. 이참에 성경 전체를 필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노역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공책과 볼펜을 구입했다. 다른 죄수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 때 이씨는 곁눈을 팔지 않고 필사작업에 매달렸다.

그때까지 볼펜을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던 탓에 글씨는 엉망이었다. 그렇지만 필사작업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성경 한 권을 베끼는 데 2년이 걸렸다. 차츰 속도가 붙어 한 권을 쓰는 데 걸린 기간을 1년 반으로 줄였다. 출소한 2012년까지 성경 7권을 베껴 썼다.

부산교도소 조창호 교위는 “이씨가 성경을 필사하면서 평안을 되찾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이씨는 무척 성실했고, 출소 후에도 사회 적응을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씨가 베낀 성경은 교도소로 봉사활동을 하러 온 목회자들이 전도용으로 쓰기 위해 모두 가져갔다. 그에게 남은 것은 믿음과 볼펜을 잡았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의 둘째 마디에 박인 굳은살이다. 굳은살은 그에게 역경의 열매나 다름없다.

“성경을 쓰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됐어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10)는 말씀을 가장 좋아합니다. 늘 두렵고 외로웠는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한테도 손을 내밀어주는 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마 성경을 베끼면서 깊이 묵상하지 않았다면 회심(回心)하지 못했을 겁니다.”

2012년 10월 지긋지긋한 교도소를 나선 이씨는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광야교회(임명희 목사)를 찾아갔다. 이전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교회 문을 두드린 것이다. 임명희 목사는 3개월 동안 생면부지의 이씨를 지켜봤다. 매사에 열심이고 신실하고 요리솜씨가 뛰어난 그를 광야교회 광야홈리스복지센터 요리사로 채용했다. 그는 노숙인과 쪽방촌 거주자 500명이 하루에 세 끼 먹을 분량의 음식을 요리한다. 일은 고되지만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교회에서 네 살 연하의 배필도 만났다. 뒤늦게 결혼식을 올렸고, 임대주택에 둥지를 틀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난생처음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이씨는 "누군가를 돕고 이웃과 어울리며 사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지독한 고통과 외로움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늘 주님께 기도합니다. 저를 붙잡아 달라고."

이씨는 앞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서원했다. 기회가 되면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날 날을 손꼽아 고대하고 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