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국가’ 대한민국⑤] “중독은 완치 불가능… 국가서 상시 관리해야”

입력 2014-06-16 02:52
지난 4월 17일 핀란드 헬싱키 대학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하누 알호 교수는 “도박이든 술이든 중독은 한번 시작되면 완전한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애초에 중독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살기 좋은 나라’로 손꼽히는 핀란드에서도 중독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핀란드 정부는 세수를 늘리기 위해 도박 사업을 벌이고, 도박 중독자 치료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중독의학회(ISAM) 회장인 하누 알호 핀란드 헬싱키대 교수는 “중독을 완벽하게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지난 4월 17일 핀란드 헬싱키 교외의 헬싱키대 연구실에서 만난 알호 교수는 “중독에는 ‘치료’가 아닌 ‘관리’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며 “핀란드는 중독자를 완전히 치료한다기보다 국가 차원에서 상시 관리한다는 방침을 세워 놨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독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다. 최근에는 마약·알코올이 작용하는 뇌 부위를 차단하는 약물 ‘날트렉손’을 이용해 도박 중독자의 중독 증세를 완화시키는 연구로 주목받았다. 북유럽 국가들이 알코올 중독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알호 교수는 “핀란드에서는 알코올 중독 문제만큼 도박 중독 문제도 심각하다”고 했다.

현재 핀란드 정부는 카지노 사업을 독점 운영한다. 카지노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정부 수입에 상당한 보탬이 된다. 이 때문에 주유소부터 맥도날드, 사탕가게까지 핀란드 곳곳에서 슬롯머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알호 교수는 “슬롯머신을 없애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지만 이미 세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박은 신체에 직접적인 화학물질을 투여하는 게 아님에도 도박을 할 때의 뇌는 마약류를 사용할 때와 비슷한 형태로 활성화된다”면서 “도박은 헤로인 등 마약과 동류로 취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호 교수에 따르면 핀란드에서는 매년 2조원 가까운 돈이 알코올 등 중독 관리비로 쓰인다. 약한 단계의 중독 환자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상시 치료가 진행된다. 환자의 상태가 심각해지기 전 미리 치료하는 게 비용이 덜 든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국가에서 제공하는 치료는 모두 무료다. 교수 등 전문직들이 내는 세금이 수입의 거의 절반에 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중독 치료기관에서는 환자의 신상정보나 보험 가입 등을 요구하지 않고, 이민자도 시민권만 있으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며 “치료기관의 문턱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헬싱키=글·사진 정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