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어려운 道닦기

입력 2014-06-16 02:11

토요일 출퇴근하던 시절이 없었던 듯 이제 금요일이면 주말이라고 할 수 있게 됐다. 주말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먹자골목도 목·금요일에 붐빈다. 대형마트도 그렇다. 소비 충동의 공신이라는 경쾌한 음악이 인파와 함께 매장을 들썩인다. 판촉용 음식냄새가 기름지다. 일회용 그릇과 술, 바비큐 숯과 고기 등으로 가득한 장보기수레가 줄을 지어 계산을 기다린다. 더운 날씨에도 그늘진 곳에는 등 시린 이들이 있으며 경제가 어떻다고 앓는 소리를 하지만 사거나 먹는 장소마다 풍요와 활력이 넘친다. 대형마트와 먹자골목은 점잖지 못한 표현으로, 주말이면 매번 대박이다.

자자, 어쨌건 잔뜩 산 후 계산대 앞이다. 어느 계산대나 뒤의 매장까지 수레와 사람이 빼곡 선다. 저마다 가득 샀으니 계산이 빠를 리 없다. 무슨 물건을 저렇게 많이 사서 뒷사람에게 폐를 끼친담. 사실은 기다리는 입장이라서 지루하지 계산원의 숙련된 손놀림은 마술사처럼 빠르다. 자기 물건 계산할 때도 오래 걸릴 게 빤하건만 기다리는 이들은 앞사람 때문에 짜증난다.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는 계산원도 물건을 빨리 담지 못하는 손님 때문에 짜증난다. 무표정에도 표정이 있어서 보는 이에게 그대로 읽힌다. 앞사람이 장바구니에 아직 옮기지 못했는데 결국 다음 사람 물건이 덮쳐온다. 앞사람은 허둥거린다. 빨리 물건을 담지 못하는 자기가 어쩐지 잘못하고 있는 기분이다. 얼굴빛이 벌게진다.

오래전 철학시간에 들은, 대부분 다 아는 이야기가 있다.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늦어 뛰어간다. 교수가 묻는다. 학생은 왜 그렇게 바삐 뛰어가는가. 강의시간에 늦어서 뛰어갑니다. 강의에 좀 늦으면 어떤가. 강의에 늦으면 강의를 못 듣고 그러면 학점이 나빠지며 학점이 나쁘면 좋은 직장에 취직이 어렵고 좋은 직장에 취직 못하면 잘살지 못합니다. 교수가 묻는다. 잘산 후엔? 잘산 후엔… 죽습니다. 교수가 맨 처음 물었을 때 죽으러 뛰어간다고 하면 됐을 이야기이다. 그야 잘살지 못했대도 그 다음엔 죽는 거겠지. 오지 말라고 해도 그날은 온다. 죽기 위해 바삐 빨리 뛰어가지는 말자는 말씀인가보다.

빨리, 혹은 천천히 해도 좋을 일이 각각 무엇인지 가늠하며 실천해볼 노릇이다. 장본 후 바삐 가봤자 어차피 놀고먹을 순서 아닌가. 계산이야 계산원이나 손님이나 서로 간에 도를 닦듯 천천히 해도 상관없을 일. 하지만 도 닦기란 막상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지.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