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매실이네. 한 상자에 얼마 해요?”
요즘 큼직한 매실도 많은데 올망졸망한 매실을 보고 반색하는 송희(48·서울 연남동)씨. 저쪽에서 이런 송씨를 보고는 쌈지농부 천재박 차장이 잰 걸음으로 다가왔다. 천 차장은 “이 매실은 충북 괴산에 있는 큰손농원의 김성규님이 토종 매화나무에 농약을 치지 않고 길러서 얻은 귀한 열매”라고 소개했다. 토종 매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려 하자 송씨는 말을 가로챘다. “알은 작아도 진액도 많이 나오고 장아찌를 담아 놓으면 살이 쫀득쫀득하지요. 알아요.” 매실 생산자의 연락처를 받아든 송씨는 버찌를 사면서 “이런 계절 특산물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동진시장의 화요 장터 모습이다. 키운 사람을 소개하고 어떤 품종인지 알려 주는 광경은 요즘 마트에선 보기 어렵다. 재래시장에서도 기껏해야 ‘깎아달라’는 흥정이나 오가는 정도다. 천 차장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시장이라 농부들의 이야기가 덤으로 따라 간다”며 허허 웃었다.
동진시장의 화요 장터는 매주 화요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만 선다. 열 가지 남짓한 채소를 4인용 교자상 크기만 한 좌판에 올려놓고 파는 초미니장이다. 강원도 횡성 친환경 재배 농부들이 수확한 농축산물을 당일 싣고 와 부려놓으면 동진시장 운영자인 모자란협동조합원들이 판매한다. 충북산인 매실은 이날 특별 출연한 셈이다.
채소 코너 바로 뒤쪽에선 지난해부터 농사를 짓고 있는 도시농부 고종혁씨가 직접 만든 과실주와 과일식초를 들고 나와 점방을 차렸다. 과일식초를 구경하는 이들에게 고씨는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면서 제조법을 들려준다. 세상에 저렇게 하면 물건이 팔릴까 싶다. 고씨는 틈틈이 유정란과 식초, 식용유로 즉석에서 마요네즈를 만들기도 했다.
모자란협동조합 최희진(공정무역회사 어스맨 대표) 상임이사는 “싱싱한 친환경 채소가 마트보다 싸기 때문인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됐는데 단골손님들이 많다”고 자랑한다. 마늘쫑장아찌, 열무김치 등 횡성에서 올라온 반찬은 담백해 1인 가구주들에게 인기가 높다. 장터에 국밥이 빠지면 무슨 재미일까. 이날 장에는 10여 가지 채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한 셰프 로이든의 ‘6월의 꽃비원’이 손님들의 출출함을 달랬다. 강원도 횡성의 친환경 채소들은 매주 화요일 목동 14단지에서 서는 ‘인드라망 마을 큰장터’에서도 만날 수 있다.
풋풋한 흙냄새가 정겨운 채소를 마트나 시장보다 싼 가격에 살 수 있고, 농부들이 만든 간장 된장 식초 잼 등을 만날 수 있는 서울 도심 내 장터들이 최근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2년 10월부터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종로구 대학로에 서는 마르쉐@혜화는 도시농부 50∼60팀이 참가해 규모가 꽤 크다. 마르쉐를 주관하는 여성환경연대 이보은 대안생활위원장은 “농부워크숍 살림워크숍 등을 통해 도시농부들이 텃밭 농사짓는 법도 알려 주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살림법도 들려 준다”고 소개했다. 이 장은 일회용품이 없다. 음식코너에서 보증금을 받고 수저를 빌려 줄 정도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이 서는데, 늘 즉석 공연이 펼쳐져 축제의 장이 되곤 한다(02-722-7944).
마포구 공덕역 부근 경의선 폐선 부지에 서는 마포 늘장에서도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8시 도시농부들이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을 만날 수 있다(02-3273-0997).
도심 장터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농부의 시장이다. 2012년 6월 첫선을 보인 이후 4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열린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선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30분∼오후 4시 30분, 동작구 여의대방로 보라매공원에서는 매주 둘째·넷째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강북구 월계로 북서울 꿈의 숲에선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에 장이 선다. 전날 오후 2시 강우확률 80% 이상이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휴장한다. 장이 설 때마다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무료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가족나들이로도 안성맞춤이다(02-3443-2695).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반나절 정겨운 고향체험 ‘도시장터’ 나들이
입력 2014-06-16 02:30 수정 2014-06-16 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