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고무풍선과 같은 폐가 어떤 원인에 의해 굳어져 불기 힘들어지거나 불면 터져버리는 풍선과 같은 형태로 변하게 되는 질환이 있다. 아직도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데다 뚜렷한 치료약이 없어 ‘불치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로 폐를 딱딱하게 만들어 숨 쉴 틈이 없어지는 ‘특발성폐섬유화증’이다. 흡연은 이 병의 가장 큰 위험인자로 알려지고 있는데, 최근 당뇨병도 이 질환을 일으키는 위험인자일 수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호흡기내과 정성환, 경선영, 김유진 교수팀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 대학병원에서 특발성폐섬유화증으로 진단받은 환자 1685명의 의무기록을 수집, 조사한 결과 17.8%가 당뇨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15일 밝혔다.
특발성폐섬유화증은 간질성 폐질환의 하나로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는 병이다. 폐 조직은 본래 말랑말랑한 상태로 팽창과 수축을 하며 호흡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이 조직이 섬유화 현상으로 단단하게 굳어버리면 폐 기능이 눈에 띄게 떨어지게 돼 숨쉬기가 어렵게 된다.
발병 초기에는 운동을 하거나 높은 계단을 걸어서 오르거나 등산을 하는 등 호흡이 빨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숨이 가뿐 정도로 그치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심한 호흡곤란과 함께 기침을 달고 살게 되고 일상생활을 수행하기가 힘들어진다. 체내 산소가 부족해 입술이 파래지는 청색증이 나타나거나 만성적인 저산소증으로 손가락 끝이 둥글게 되는 곤봉지(棍棒肢)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이런 증상은 폐 섬유화 현상과 정비례해서 심해지는 게 특징이다.
정성환 교수는 “검사결과 당뇨를 함께 앓고 있는 환자들의 폐에선 망상(網狀·그물모양)결절과 벌집모양이 당뇨가 없는 환자들보다 두드러지게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망상결절과 벌집모양은 섬유화현상이 진행되는 폐 속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당뇨 환자들은 또한 고혈압, 심혈관질환 유병률이 더 높았고, 암 발생 위험도 당뇨가 없는 환자들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치명적인 폐암으로의 발전 여부는 당뇨가 있건 없건 간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위암, 방광암, 대장암, 혈액암 등에 걸릴 위험도는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따라서 당뇨 환자 가운데 폐질환 가족력이 있거나 환자 본인의 폐가 약하다면 정기검진을 통해 특발성폐섬유화증을 조기에 발견, 진행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정성환 교수의 지적.
특발성폐섬유화증은 CT 검사로 진단이 가능하다. CT 사진 상 폐 조직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벌집모양을 하고 있거나 그물망 모양의 결절(혹)이 보이면 특발성폐섬유화증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확진은 조직검사로 이뤄진다.
특발성폐섬유화증의 가장 큰 문제는 일단 발병하면 완치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퍼페니돈’, ‘엔아세틸 시스테인’ 등의 약이 있긴 하지만 진행을 다소 억제하는 수준일 뿐 특효약은 아니다. 환자들은 이에 따라 증상 완화를 위한 산소 흡입 치료가 필수적이다.
특발성폐섬유화증의 최대 위험인자는 흡연이다. 환자들 대부분이 장기간 흡연을 해온 50세 이상 남자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성환 교수는 “비단 당뇨 환자가 아니더라도 특발성폐섬유화증을 피하려면 담배부터 끊는 게 순서”라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폐 딱딱하게 굳어지는 특발성폐섬유화증, 당뇨병 환자도 발병 위험 높다
입력 2014-06-16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