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친박근혜)·친이(친이명박)는 없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여권 내부의 계파갈등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던 최 후보자가 박근혜정부의 ‘경제 살리기’ 중책을 떠맡았다. 행정고시 22회 출신으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한 그가 경제수장으로 금의환향하게 됐다.
최 후보자는 13일 개각 직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제를 살리라는 다른 의미의 ‘중진 차출론’이라 생각한다”면서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주체들의 의욕을 북돋워주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 또 “이제 여의도는 쳐다보지도 않고 경제 살리기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최 후보자는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에서 모두 입각하는 드문 이력을 지니게 됐다. 항상 ‘친박’ 진영을 지켜 이전 정부에선 패자 편에, 현 정부에선 승자 편에 섰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오래전부터 계파에 연연하지 않았다. 항상 “사람 마음이라는 게 수시로 바뀌는 건데 어떻게 친박·친이로 구분이 가능하겠느냐”고 말해왔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친박 쪽에서는 “친이와 너무 가까운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친이로부터는 “말로만 그런다”는 의심을 받았다. 친박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최 후보자는 친박 주류와도 가깝고 친박과 멀어진 김무성 의원과도 친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빼고 최 후보자의 정치 인생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1999년 정계 진출을 위해 과감히 공직을 떠났을 때를 회상하면서 “당시 아버지가 거의 화병에 걸리셨다”고 말했다. 중간에 잠시 언론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어렵게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친박·친이 간 혈전이 벌어졌던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선후보 경선에서 최 후보자는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일약 친박의 핵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2009년 9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그를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전격 기용했다. 박 대통령이 입각하기 전에 최 후보자를 불러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 귀띔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이 전 대통령의 각료로 일하는 것에 대해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냈기 때문이다.
최 후보자는 지경부 장관을 마치고 나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매진했다. 2012년 대선에서 꿈을 이루자 ‘개국 공신’ 소리를 들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집권 여당의 첫 원내대표를 맡아 국가정보원 정치댓글 사건 등 난국을 헤쳐 나갔다.
일각에선 친박 실세인 그의 입각으로 정부 내 ‘힘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시선이 없지 않다. 지나치게 박 대통령의 말에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박근혜정부 2기 내각]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새로운 도전 “경제살리기에만 올인 ”
입력 2014-06-14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