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기다림의 영성

입력 2014-06-16 02:58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실패 이유 중 하나는 매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때에 대한 것도 자신의 때에 하나님이 맞춰주기를 바라고, 기도의 내용도 자기중심적으로 응답받기를 원합니다.

특히 무엇인가를 기다려야 할 때 우리는 조급함을 참지 못합니다. 바르게 제대로 가려고 하지 않고 급하게 가려고 합니다. 빨리 성장하여 쓰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빠름’을 원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름’을 원하십니다. 이 차이에서 항상 갈등과 저항이 존재합니다. 헬라어로 시간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됩니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 있는 시간이며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기다림의 영성은 카이로스와 관계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오신 뒤 30년 동안 기다리셨고, 처음 사역을 기다리셨고, 십자가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방주를 짓도록 계시 받고 120년이란 시간을 기다리며 방주를 건축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는 조롱거리와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고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때에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셨습니다. 또한 야곱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아내를 얻기 위하여 기다렸고 고향에 돌아오기 위하여 기다렸습니다. 벧엘에서 서원하였을 때에는 금방 돌아올 것 같았지만 주님에게는 야곱을 훈련시킬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길 때까지, 그래서 가장 강한 힘줄, 환도뼈가 부러질 때까지 주님은 야곱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가기 전 400년이란 시간이 필요하였습니다. 주님은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늘리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이스라엘의 몸과 마음이 전부 출애굽하기까지 광야에서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바벨론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기까지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말라기서부터 복음시대까지 또 다른 400년이 필요했습니다. 희랍과 로마에 의하여 땅들이 정복되고 언어가 통일돼 복음의 전파가 쉽게 되도록 주님은 기다리셨습니다.

기다림은 소망이며 약속에 근거한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의 영성에서 기다림이란 자신의 뜻이나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다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다림이며 그때에 자신을 사용해 주실 것을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디게 오시는 것 같지만 정확한 시간에 오십니다. 하나님의 계산에는 조금도 오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나를 삼킨 물고기가 입을 열어 토해 내듯이, 혹독한 고난의 터널을 지나 갑절의 복이 욥에게 임하듯이, 요셉을 가둔 감옥 문이 열리듯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차면 하나님께서는 급하고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매사에 조급해지기 쉬운 이때에 우리가 닮아가야 할 영성 중 하나가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한국 성도들에게 특히, 기다림을 상실하거나 기다림에 지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영성이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정성봉 목사(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협력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