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애경을 떠나 KTF 마케팅전략실장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KTF는 매출 5조원의 거대 공기업이었다. 그러나 이동통신 시장에선 2등 회사였다. 마케팅 수장으로 입사하자마자 냉정하고 주도면밀하게 시장 경쟁 구도를 살폈다. 그 결과 10여년간 1위를 선점한 SKT를 쉽사리 이기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전화를 많이 쓰는 비즈니스맨 대부분은 SKT를 썼다. 지인에게 처음 나온 KTF 컬러 휴대전화기를 선물했는데 1주일 만에 그들의 부인이나 자녀들 손에 가 있었다. 번호를 바꾸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번호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문제였다. 이는 내게 번호이동제의 필요성을 절감케 하는 계기가 됐다.
문제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기는 전략을 세워야 했다. 고민 끝에 나는 1등을 따라하는 ‘미투 전략’ 대신 ‘1등 전략’을 쓰기로 했다. 당시 정보통신부에서 통화품질 측정 결과가 발표됐는데 KTF가 SKT보다 딱 1점 더 높았다. 신문과 TV 등 모든 광고매체를 동원해 ‘통화품질 1등,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한 통화품질 KTF’라고 광고했다.
광고 후 두 가지 반응을 예상했다. 소비자는 ‘KTF가 통화품질 측정 결과 1등을 했다’고 인식하겠고, SKT는 분명 다른 이유를 들어 우리에게 대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맞았다. SKT는 광고에서 ‘고객만족도 1위’라며 맞섰다. 그러나 자료의 객관성 면에서 우리가 더 유리했다. KTF는 정보통신부 발표를 인용했고 SKT는 소비자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사의 신뢰도 경쟁이 목표는 아니었다. 서로 1등이라고 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누가 1등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심는 게 내 의도였다.
두 번째 싸움은 비즈니스위크지 기사에서 시작됐다. 그 즈음 비즈니스위크는 ‘전 세계에서 성장률과 수익률 면에서 최단기에 가장 크게 성장한 회사는 KTF’라고 보도했다. 우리는 ‘비즈니스위크에 의하면 KTF가 성장률, 수익률 모두 1등’이라는 TV 광고를 했는데, 이에 맞서 SKT는 ‘재무제표를 조작해 1등이 됐다’는 신문 광고를 했다. 결국 ‘이유 없는 경쟁사 비방광고’로 SKT는 그 당시 사상 최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소비자에겐 또 1등과 2등이 서로 다투는 것으로 비쳤다.
2등은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산다. 1등과 비슷한 점만 있어도 자신감 있게 싸워야 한다. 하지만 안락한 2등에 익숙해져 싸울 용기조차 내지 않는다. 이것이 2등이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기에 2등은 1등 했을 때 대내외로 이를 표명해야 한다. 그래야 경영자, 직원, 소비자 모두 확신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SKT와의 싸움에서 항상 1등 전략을 썼다. 어느 회사든 2등일 수밖에 없는 분야가 있다. 나는 ‘1등 하는 부분만 더 강조해라. 그러면 진짜 1등 한다’는 생각을 했고 이대로 밀고 나갔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시장을 아주 세분화해 1등 전략을 펼쳐야 한다. 이것이 2등이 취할 전략이다. 애경이나 KTF나 업종은 다르지만 마케팅 방법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던 이유다.
나는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선 KTF가 무조건 3G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사장에게 강력히 건의했다. “대한민국 마케팅 교과서에 기록될 만한 브랜드와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3G로 과감히 이동하시지요.” 이렇게 KTF ‘쇼(SHOW)’ 브랜드가 탄생했다. 쇼로 1위를 탈환한 우리는 2008년 이유재 서울대 교수의 서비스마케팅 강의 자료에 성공 사례로 소개됐다.
2등에 안주하지 않고 1등을 넘어서는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은 의지에 달렸다. 세라젬 H&B에서도 같은 전략을 쓴다. 신생 기업이 처음부터 1등일 수 없다. 그러나 직원들에게 계속 우리는 ‘세계 1등 회사’란 것을 강조한다. 어차피 우리가 1등이 될 테니까. 진정한 리더는 직원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잘 심는 사람이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역경의 열매] 조서환 (10) 1등을 따라하는 ‘미투 전략’ 대신 ‘1등 전략’을
입력 2014-06-16 0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