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성숙한 기다림의 신앙

입력 2014-06-14 02:19

인생은 기다림에서 시작됩니다. 기다림을 통해 우리는 서로 만납니다. 기다림으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 중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긴 기다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으로 인생의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인생의 길이 열리고, 기다림을 통해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기다림이 없다면 살아 있으나 죽은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다림의 대가(大家)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릴 수 없는 중에 25년을 기다려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14년 기다림 끝에 자기가 사랑하는 라헬을 얻었습니다. 요셉은 어두움의 긴 터널 속에서 13년을 기다려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려 출애굽의 리더로 하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혹자는 기다림이 수동적이라고 말합니다. 나약한 사람들의 체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급함이 인생을 허물어 버립니다. 아브라함의 조급함이 불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고 인류 역사의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향한 ‘프란츠 카프카’의 조언은 우리를 돌아보고 점검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큰 죄는 두 가지가 있다. 조급함과 게으름이다. 다른 모든 죄는 여기서 나온다.” 성숙된 기다림은 사람을 여유롭게 만듭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 1:4)

물론 기다린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태도로 기다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소망하기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날이 우리 앞에 도래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헛되지 않아 정확한 하나님의 시간에 만나 주시고 하나님의 새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25절) 그는 나라를 잃고 주권을 빼앗긴 이스라엘의 위로자, 곧 예수님의 오심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았습니까?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하루하루 신실한 태도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심 외에 무엇이 더 절절했겠습니까?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얼마나 간절하게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먼 하늘 이상한 구름 떠도 내 주님 오시기를 고대합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꿈에도 기다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이시요, 전부이십니다. 우리는 시므온처럼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다릴 때 영광을, 구원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기다림의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박대훈 목사 (청주서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