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기브 앤 테이크

입력 2014-06-14 02:45
한라산 참나무 군락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우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사과나무가 한 인간에게 베푸는 아낌없는 희생의 정신을 단계적으로 표현한 책이다. 소년이 청년이 되고 노인이 될 때까지 사과나무는 그루터기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몰골이 되어 베푸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참 많다. 참나무류의 나무들은 도토리라는 열매로써 산속의 동물들은 물론 인간에게도 아낌없이 베푼다. 도토리는 긴 겨울 다람쥐의 양식이 되며, 인간에게는 흉년이나 가뭄이 들었을 때 좋은 구황식품 역할을 했다. 나무는 아니지만 세계의 2대 식량 작물인 벼와 밀도 인간들에게 아낌없이 준다. 열매인 쌀과 밀은 물론 볏짚과 왕겨, 밀기울, 밀짚 등 작물 전체가 사료와 세공 등에 이용된다.

이 같은 베풂은 ‘진화는 이기적이다’는 진화론의 기본과는 분명 위배된다. 베푸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지 기회비용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아낌없이 줌으로써 그 ‘나무’들은 진화에 실패했을까. 아니다. 산에서 참나무가 가장 번성한 이유는 바로 도토리 덕분이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모아 여러 곳에 묻어두지만 잘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어서 봄이 되면 도토리에서 일제히 싹이 난다. 한해살이풀인 벼와 밀의 경우 다음해의 자손 번식에 대한 걱정 따윈 할 필요가 없다. 인간들이 겨울 동안 낟알을 잘 챙겨 보관하고 싹이 나면 정성스레 가꿔주기 때문이다. 세계 전체의 벼와 밀 재배 면적을 합하면 약 3억6000만㏊로 한해살이풀로서는 가장 번성한 작물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탄생한 사과나무 역시 사과라는 달콤한 열매로써 인간에게 길들여지며 자연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진화한 나무가 되었다.

와튼스쿨의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기브앤테이크’라는 책에서 베풂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눴다. 주는 것보다 더 많이 챙기려는 테이커(taker), 받는 만큼 주는 매처(matcher),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기버(giver)가 바로 그것. 저서에서 그랜트는 셋 중 기버가 성공이라는 사다리의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기대수명을 높이는 요인도 우리가 얼마만큼 주느냐에 달렸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인간의 경우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 원숭이 역시 암컷의 수명이 더 긴데, 암컷이 혼자 육아를 담당하는 종에서만 그렇다. 예를 들면 수컷이 육아를 담당하는 남미의 티티원숭이는 수컷의 생존 비율이 암컷보다 20% 더 높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