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카이스 이준엽 대표의 삶과 꿈… 사교육 걱정 덜어주고 나눔으로 교육격차 줄인다

입력 2014-06-14 02:53
올해 초 지난 27년 동안 꿈꿔왔던 회사를 창립한 이준엽 대표. 13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한국카이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꿈은 가깝고 먼 단어지만 매일 감사일기와 함께하면 반드시 실현된다"고 밝혔다. 강민석 선임기자
이준엽 대표(가운데)와 인기 방송인 아이작(오른쪽 두 번째)이 직원들과 공익형 '대원인강'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밝게 웃고 있다. 한국카이스 제공
‘시각장애인 아버지·계모·단칸방.’ 그의 어린 시절은 외롭고 쓸쓸하며 참 우울했을 것 같았다.

“아이 눈은 어때요?” 한국카이스㈜(CoreaKYSS) 이준엽(43) 대표는 1971년 초겨울 시각장애 안마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는 말에 그의 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비장애인으로 세상의 빛을 본 아이는 반듯하게 자라나 17세부터 사업가를 꿈꿨다. 자신의 미래 회사 이름을 ‘CoreaKYSS’라 짓고, 지우개로 도장을 파서 모든 책에 찍었다. ‘KYSS’는 이 대표의 원래 이름인 ‘기엽’(2009년 현재의 이름 준엽으로 개명)에 아버지의 출장 안마원 상호였던 ‘신신안마원’의 신신을 합쳐 만든 ‘기엽신신’의 영문 이니셜이다.

어릴 때 그에게 ‘신신’이라는 이름은 시각장애인의 상징이요, 가난의 상징과도 같았다. ‘맹인자식’이라고 사람들이 천대하는 것도 싫었고 가난한 것도 싫었기에 ‘신신’이라는 이름은 정말 영원히 지우고 싶은 이름이었다. 그런데 철이 들면서 그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 이름이었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나중에 사업을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돕겠다는 의미를 담아 자신의 이름에 ‘신신’을 붙여 회사 이름을 지은 것이다.

23세까지 단칸방에서 안마사 등 10명의 식구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다. 27세 때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란 사실을 안 뒤로 어머니에게 더욱 감사하게 됐다. 이 대표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삼성물산에 들어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에는 2000만원으로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EBS와 함께 ‘매튜와 뚝딱이의 톡톡 잉글리쉬’ 시리즈를 제작해 그해 12월과 다음해 1월에 출시했다. 한국카이스라는 이름은 2004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영어학원을 개원할 때도, 2009년에 경기도 군포 영어마을 사업자가 됐을 때도 쓰지 않았다. 너무 소중한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사교육 1번지’라는 강남 대치동에 최고급 영어학원을 열었을 때 많은 사람이 그를 부러워했다. 주변 사람들은 사업가의 꿈을 이뤘다며 축하해줬다. 하지만 교육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어느 날 이 대표는 어머니에게 “더는 교육 사업을 못하겠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단호하게 나무랬다. “사업은 네가 선택하고 네가 좋아서 한 일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힘들다고 하면 안 된다. 기쁜 일이 있고 고마운 일이 있어야 하는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지. 그건 감사가 아니야.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하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야.”

학원 사업은 결국 2011년에 막을 내렸다. 어릴 때부터 서원하고 꿈꿨던 사업은 과연 이런 것이었나 하는 회의도 들었다.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고급 교육을 펼치며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10년에는 불혹을 맞아 책(나의 심장은 멈추지 않는 엔진이다·국일미디어)을 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쓴 ‘감사일기’를 정리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13년간 교육 사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박’을 꿈꾸고 있다. 올해 초 27년 만에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한국카이스를 설립했다. 오는 8월에는 청소년 공익재단인 ‘행복함께나누는재단’이 참여하는 공익형 인강(인터넷 강의)인 ‘대원인강’을 론칭한다. 대원인강은 중고생을 위한 영어, 수학 맞춤형 학습서비스를 제공하는 신개념 인강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대원인강을 통해 나눔과 기부를 실천할 예정이며, 대한민국이 교육 격차 없는 교육 강국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매출의 10%로 어려운 이들을 돕고, 또 다른 10%는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무상으로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가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해주는 나라로 바뀐 세계 유일한 나라인데 저는 그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저는 70년대부터 89년까지 미국인 부부가 한 달에 만원씩 도와주는 돈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남의 도움으로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기에 저 역시도 그것을 되갚는 교육사업을 그동안 해왔습니다.”

이 대표는 아버지가 주경야독으로 신학을 공부한 후 2001년 파주시 금촌동에 개척한 하나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13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한국카이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의 얼굴에선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