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불공정 약관 아니다” 첫 판결 “고객 부담 근저당권 설정비 금융사가 반환 안해도 된다”

입력 2014-06-13 02:53
부동산 담보대출 계약과정에서 고객이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비를 금융기관이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현재 하급심에 계류 중인 같은 취지의 소송 300여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2일 곽모(76)씨 등 31명이 교보생명, 현대캐피탈 등 15개 금융기관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근저당권 설정비는 고객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내야 하는 등록세·인지세·감정평가수수료 등의 부대비용이다. 그동안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조건으로 고객들이 근저당권 설정비를 부담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 측이 부담하도록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은행 측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2011년 8월 ‘근저당권 설정비를 소비자가 부담하게 한 은행 약관은 불공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근저당권 설정비를 돌려 달라는 고객들의 소송이 잇달았다. 은행 측은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조건으로 고객과 개별적으로 합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법원은 고객들이 근저당권 설정비 부담을 은행과 합의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전제했다. 고객이 은행과 대등한 지위에서 비용 부담에 대해 충분한 검토와 고려를 할 수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은행의 약관이 무효가 될 정도로 불공정한 약관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약관 조항을 무효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조항이 고객에게 다소 불이익하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건전한 거래질서를 훼손하는 등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줬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현수 박은애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