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무장단체, 바그다드 북부 110km까지 진격

입력 2014-06-13 04:07

이라크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가 11일(현지시간)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10㎞ 떨어진 도시인 사마라 근방까지 진격하는 등 남쪽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라크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미군이 2011년 12월 완전철수한 뒤 3년이 안돼 이라크가 다시 통제 불능 사태에 빠지는 양상이다. 현 이라크 시아파 정권의 무능과 수니파에 대한 차별적 정책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는 전날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장악한 데 이어 11일에는 바그다드에서 150㎞ 떨어진 살라헤딘주의 티크리트를 점령했다. 티크리트는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고향이다. 이들은 이라크 최대 정유시설이 있는 티그리트 인근 바이지 일부 시설을 장악했다가 정부군의 반격에 퇴각했다. ISIL은 티크리트에서 남쪽으로 40㎞ 더 진군해 사마라 주변에 진을 쳤다. 한때 사마라 진입을 시도했으나 정부군이 공습해 진입을 포기하고 현재 외곽에서 병력을 결집하고 있다. 일부 세력은 바그다드 북쪽 90㎞의 우드하임 마을에서도 교전을 벌였다.

이로써 ISIL의 수중에 넘어간 지역은 안바르주 라마디 일부와 팔루자 전체에 이어 니네바주와 살라헤딘주 등으로 이라크 중앙정부 관할 지역의 20%에 해당한다. 이들은 니네바주 인근에 위치한 키르쿠크주 남부에서도 교전 중이다. 잇따른 교전으로 최근 며칠 사이 50만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

ISIL이 빨리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이라크 정부군이 사용하는 미군 험비차와 경찰차를 타고 각 도시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부군과 경찰은 같은 정부군인 줄 알고 손을 놓고 있다가 공격을 당했다. 또 키르쿠크 지역에서 정부군이 전부 도망가 쿠르드족이 대신 방어에 나서는 등 ISIL의 기세에 눌려 이라크군이 싸우지도 않고 도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ISIL은 트위터를 통해 "신이 축복한 침략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알 아드나니 ISIL 대변인도 "바그다드까지 진격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외신들은 남쪽으로 갈수록 정부군뿐만 아니라 시아파와도 전투를 벌여야 해서 ISIL이 이전처럼 쉽게 도시들을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누리 알말리키 총리는 전날 이라크 의회에 비상사태 선포를 위한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지만 12일 열린 회의에서는 의사 정족수 미달로 안건이 상정되지 못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젠 사키 대변인은 "미국은 이라크 정부에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미군 파견 계획은 없다"고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번 사태를 "이라크 국민에게 자행된 테러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터키 정부는 ISIL이 모술 주재 터키 총영사관을 급습해 자국민 48명을 납치하자 "생명에 위협이 가면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번 사태로 국제 유가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