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아침.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는 공포에 질렸다.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증권거래소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이다. 공포는 이성을 갉아먹었다. 10월 29일 화요일에는 주식시장 대붕괴(Great Crash)가 벌어졌다. 이날부터 11월 13일까지 300억 달러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주가는 계속 추락하고, 주식에 투기했던 기업과 은행은 줄줄이 무너졌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경제가 망가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바로 대공황이다.
대공황은 명백한 인재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엄청난 무역 흑자를 올렸다. 돈 깨나 있는 이들은 너나없이 주식에 투자하고 흥청망청했다. 하지만 호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소비가 생산을 따라가지 못했고, 재고가 쌓이자 기업은 생산량과 고용을 줄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연방준비은행은 증시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돈줄을 조였다. 긴축 통화정책은 투기는 막지 못한 채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켰다.
대공황은 ‘없는 이’에게 더 가혹했다. 상점과 공장에 팔리지 않는 물건이 잔뜩 쌓였는데 거리에서는 굶주린 사람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돌아다녔다. 농장주는 가격 유지를 위해 남아도는 오렌지를 땅에 묻는데 농장 밖에서는 오렌지를 훔치다 경비원 총에 맞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존 스타인벡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분노의 포도’에 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는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고 비판했다.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는 대공황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탐욕과 투기에 눈 먼 금융자본주의는 세계경제를 긴 불황의 늪에 빠트렸다. ‘21세기 자본론’을 쓴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면서 생기는 소득 불평등’을 꼬집고 있다.
불평등은 우리 경제에서도 싹을 틔우고 있다. 최근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터널로 진입하게 된 배경에는 소비 둔화에 따른 내수 부진, 가계저축률 급락, 가계부채 증가라는 ‘3종 세트’가 자리 잡고 있다. 이것만 보면 국민들이 돈을 쓰지 않아서 경제가 어려워진 걸로 보인다. 그런데 막상 쓸 돈이 없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05∼2010년 국민총소득이 2.8배로 늘어나는 동안 가계소득은 1.6배 느는 데 그쳤다. 반면 기업소득은 26.8배로 급증했다.
6·4지방선거가 끝나자 박근혜정부는 내수 활성화 기치를 들었다. 저성장에서 벗어나려면 내수가 살아나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내수 진작, 투자 활성화는 있어도 ‘분배’를 언급한 대목은 없다. 내수 활성화의 기본은 수요 창출이다. 수요는 ‘가진 이’보다 다수를 차지하는 ‘없는 이’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이웃나라들은 경제 살리기를 위해 임금 인상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아베노믹스’라는 활에 ‘임금 인상’이라는 세 번째 화살을 먹였다. 대놓고 기업들에 노동자 임금을 올려주라고 요구한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지난해 대비 7.2% 오른 시급 5210원이다. 우리나라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회원국 가운데 미국과 함께 가장 높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김찬희 산업부 차장 chkim@kmib.co.kr
[뉴스룸에서-김찬희] 분노의 포도
입력 2014-06-13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