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민일보와 예정한 인터뷰는 취소합니다." 2002년 6월 19일이었다. 기자가 이탈리아 출장을 떠나기 이틀 전날,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로마시청에서 느닷없이 만나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전날 대전에서 월드컵 16강전이 열렸는데, 한국이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2대1로 이겼던 것이다. 로마에서 만난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기자에게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축구가 뭐라고.
독일의 스포츠 전문기자 토마스 키스트너가 쓴 ‘피파 마피아’를 읽으면, 로마의 공무원이 단순히 조국의 패배 때문에 인터뷰를 취소한 것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키스트너는 이탈리아전의 심판을 맡았던 비론 모레노가 “개최국에 유리하게 휘슬을 불었다고 믿을 구석이 정말 많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의 공격수 프란체스코 토티가 패널티박스 안에서 넘어졌을 때 패널티킥 대신 퇴장을 명령한 판정을 거론했다.
“한국은 두 번이나 그런 모호한 심판 판정 덕을 보았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8강전에서 한국이 만난 상대는 스페인이다. 다시금 명백한 오심이 월드컵 개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모레노 심판은 정말 한국에 매수당해 불공정한 판정을 내렸을까? 그건 밝혀지지 않았지만, 월드컵 전까지 빚에 시달리던 그는 갑작스레 돈을 펑펑 물 쓰듯 했고 2010년 미국 뉴욕에서 6㎏의 헤로인을 갖고 다니다 체포됐다. 한국인으로서는 인과관계를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나, 적어도 의혹을 가질만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 책에서 한국과 관련된 부분은 몇 쪽 되지 않는다. 지은이는 자신의 조국 독일에서 벌어진 2006년 월드컵에서도 독일팀이 쉬운 상대를 만나는 기묘한 행운과 상대팀이 무차별적으로 레드카드를 받는 혜택을 받았다고 고발한다. FIFA 안팎에서 벌어진 수백, 수천억원대의 부정부패와 비교하면 이런 사례는 오히려 곁가지에 불과하다.
이 책이 기록하는 월드컵의 실상은 이렇다. 흥행을 위해 주최국을 4강으로 올려 보내려 안간힘을 쓴다. 수수료를 더 많이 얻으려는 꼼수로 축구장의 객석을 텅 비워둔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소수의 축구권력자들이 나눠 갖기 위해 온갖 탈법과 조작이 난무한다. 키스트너가 축구나 프로스포츠를 혐오하는 사람은 아니다. “축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라고 생각하는 그이지만, 1990년부터 20여년 월드컵 현장을 취재하다보니 이런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제프 블라터 회장의 연봉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FIFA 안에 아무도 없다. 4년마다 치러지는 월드컵으로 40억 유로(약 5조5000억원)을 벌어들이지만 그 돈이 어디로 가버리는지는 불투명하다. 부패와 불법이 밝혀져도 고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조작을 저지르고 엄청난 소송비용을 들여 덮어버린다. 키스트너는 “이 세계에서 FIFA를 개혁할 수 있는 곳은 딱 하나, FIFA사무국이 위치한 스위스의 검찰 뿐”이라며 한탄한다.
브라질에서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학교와 병원, 대중교통에 써야할 세금 수십조원이 경기장을 만드는데 들어갔기 때문이다. 차차기 월드컵 개최지인 카타르는 50억원의 뇌물을 썼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개최권이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심지어 FIFA의 스폰서인 아디다스, 소니, 비자카드 같은 업체들까지 “스캔들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축구를 개선하고 세계를 하나로 묶는다’는 FIFA의 존재이유가 ‘축구를 망치고 세계를 소수의 손아귀에 넣는다’로 바뀌어버렸다고 책은 고발한다.
마케팅이 축구를 삼켜버렸고, 그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다시 축구를 망치고 있다. FIFA의 회장단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디다스 창업가문과 만나게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모두가 축구를 즐기고, 그걸로 누군가 돈을 벌면 그것으로 좋은 것 아닌가?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한국에서 벌어진 세월호의 비극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익 추구 집단과 감독관청이 밀접하게 맞물릴 때 참극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보내는 신호입니다. 바로 그래서 오락산업의 가장 통제받지 않는 부문인 프로축구 역시 인생을 지배하는 권력이 되거나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받아서는 안 됩니다. 축구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저 마케팅과 정치, 미디어의 힘으로 부풀려진 가죽공으로 둘러싼 비즈니스일 따름입니다.” 김희상 옮김.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책과 길] 월드컵 수익 ‘5조5000억원’의 비밀
입력 2014-06-13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