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둑한 ‘프리미엄’의 유혹… 다운계약 판치나

입력 2014-06-13 03:33
자영업자 김모씨는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부동산 중개업자들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가진 주상복합아파트 판교 알파리움의 분양권을 되팔지 않겠느냐는 문의였다. 내년 말 경기도 성남 분당에 들어서는 판교 알파리움은 지난해 6월 분양 당시 청약 대박을 터뜨린 단지다. 청약 경쟁률이 평균 26대 1, 평형별로는 최고 399대 1이었으니 분양시장에선 지난해 최고의 상품이었다. 이런 아파트엔 막 대한 프리미엄(웃돈)이 붙고 전매를 제안하는 중개업자가 꼬이게 마련이다.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온 업자들도 그런 부류였다.

달콤한 유혹

그들은 프리미엄으로 8000만원부터 많게는 1억5000만원까지 불렀다. 김씨가 분양받은 집은 전용면적 123㎡(약 37평)로 분양가는 9억원대였다. 이 분양권을 지난 1월에 팔았다면 6개월 만에 최대 16%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김씨가 중개업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 전매 금지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아파트는 분양 후 1년간 되팔 수 없다. 판교 알파리움 분양권은 오는 20일에나 풀린다. 그런데도 업자들은 수수료로 500만원 정도만 내면 모든 절차를 문제없이 처리해주겠다고 했다.

보통 이 과정엔 거래 가격을 실제보다 낮게 적는 다운계약서가 등장한다. 분양 후 1년 또는 2년 이내 팔 경우 내야 하는 40∼50%의 양도세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다. 다운계약서를 쓰면 양도차액을 고스란히 챙기지만 정상 계약을 하면 차액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동탄2신도시와 위례신도시 등 최근 분양권이 풀린 지역에선 다운계약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씨는 “나라고 유혹을 안 느꼈겠느냐”며 “고민이 됐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다운계약이 적발되면 양도세를 추징당하는 건 물론 그 금액의 40%를 가산세로 물어야 한다.

하반기 분양권 쏟아져

다음 달부터는 수도권 민간택지 내 주택의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이 1년에서 6개월로 단축된다. 이런 내용을 담은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청약 수요를 유발해 분양시장을 띄우겠다는 의도다. 분양권을 좀 더 빨리 되팔 수 있게 되면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청약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기 시세 차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투기를 막으려고 금지한 전매를 완화한 데 대해 국토교통부는 “최근 시세 차익에 따른 투기 우려가 없는 시장상황을 감안했다”며 “지방은 전매 제한이 이미 2008년 9월 폐지된 점 등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 규정은 소급 적용된다. 공포일로부터 1년 이내 분양 계약을 한 뒤 6개월이 지났다면 분양권을 팔 수 있다. 지난해 6∼12월 분양한 단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국토부는 전국에서 약 5만5000가구가 예정보다 일찍 분양권 시장에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는 이들 주택을 포함해 지난 5월부터 올 연말까지 분양권 전매 제한이 풀리는 물량을 전국 8만7971가구로 집계했다.

다운계약 판칠까

일각에선 전매 제한이 완화되면 다운계약 같은 불법거래가 더 성행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약 경쟁률이 높았던 단지는 프리미엄이 많이 붙는 만큼 매도자가 양도세 회피를 위해 다운계약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분양권은 당첨 후 1년 안에 팔면 양도차익의 50%, 2년 안에 팔면 40%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수도권 민간택지 내 주택의 분양권은 이제 6개월 뒤부터 팔 수 있지만 1년이 될 때까진 양도차익의 절반을 세금으로 뗀다.

다운계약은 보통 부동산 과열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지금은 위례신도시 등 인기 분양시장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이런 지역은 프리미엄이 높고 분양권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 매수자로선 다운계약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전매 제한 완화로 분양권 거래가 더 활발해지면 다운계약은 더 늘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현상이 부동산시장 전반에서 나타나진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양극화 심해질 수도

정부의 전매 제한 완화 방안은 분위기 전환용 정도라는 의견이 많다. 분양시장의 전체 흐름을 바꿀 만한 힘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위례신도시와 마곡지구 등 현재 수도권에서 분양권 프리미엄이 형성된 대표 지역은 공공택지라서 이번 정책과 무관하다. 서울은 대부분 재건축·재개발 단지만 수혜 대상에 포함된다. 이달 분양 아파트 중 혜택을 받는 수도권 민간택지 내 단지는 서울 2곳(666가구), 경기 1곳(2122가구) 등 3곳(2788가구)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원래 잘되는 곳만 더 잘되는 분양시장 양극화를 우려하고 있다. 강남 역세권 재건축 단지 등 돈이 되는 물량에 청약 수요가 더욱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분양권에 환금성을 줬으니 괜찮은 물량에는 청약자가 늘면서 분양시장이 더 커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청약 쏠림으로 분양시장 양극화 현상이 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