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신 신청해주겠다”며 갈취… ‘기초연금 사기’ 저소득 노인 울린다

입력 2014-06-12 02:02
다음 달부터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이 지급된다는 점을 악용한 사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 범죄에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 홍보활동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오후 3시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사는 강모(78) 할머니에게 50대 남성이 찾아왔다. 자신을 구청 직원이라고 소개한 그는 다음 달 지급되는 기초연금과 관련해 설명할 것이 있다고 했다. 강 할머니가 별다른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자 그는 “할머니는 월 75만원의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받으려면 신청·접수비로 22만5000원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독거노인인 강 할머니는 그동안 월 9만9100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었다. 연금이 7배 이상 나온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할머니는 인근 시중은행 지점에 들러 돈을 뽑아 그에게 건넸다. 돈을 받아든 그는 그대로 줄행랑친 뒤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노인들이 기초연금 수급 절차에 대해 잘 모르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뒤늦게 사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강 할머니는 다음날 이런 사실을 동작구청에 털어놨다. 구청은 할머니의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고, 현재 서울 동작경찰서는 할머니의 돈을 가로챈 50대 남성을 쫓고 있다. 동작서 관계자는 11일 “해당 남성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할머니가 돈을 인출한 은행 지점의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기초연금에 대한 노인들의 관심을 악용한 범죄는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부산시 북구 덕천동 부민병원 앞에서 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김모(85) 할머니에게 80대 여성이 접근했다. 이 여성은 “정부의 복지예산이 늘어 노령연금이 올랐다”며 “오늘 중으로 신청해야 받을 수 있으니 주민센터에 대신 신청해주겠다”고 한 뒤 접수비 3만원을 받아 챙겼다. 김 할머니는 돈을 준 뒤 직접 주민센터를 방문한 뒤에야 사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날 부민병원 인근 구포동의 구포시장에서도 같은 여성이 80대 할머니 2명에게서 기초연금 신청비 명목으로 각각 1만5000원씩 3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기초연금 사기에 대한 피해예방 홍보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홍보수단이 구청에서 월 1회 발간되는 자치구 소식지와 인터넷 홈페이지뿐이어서 노인들이 제대로 알기 어렵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동사무소에서 나왔다며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받아가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면서도 “소식지에도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분들은 기초연금을 별도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 정도만 들어간다. 수수료 피해라든지 주의사항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예방대책 준비에 나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달 중으로 신문과 TV광고를 활용해 기초연금 사기 예방대책을 적극 홍보할 방침”이라며 “기초연금 신청에는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으며,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즉시 경찰서에 신고토록 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