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화당 대혼란… 중간선거 판 흔들

입력 2014-06-12 02:01
미국 공화당 2인자로 꼽히는 에릭 캔터(51·버지니아) 하원 원내대표가 당 예비경선에서 졌다. 강경보수 유권자 단체인 티파티(Tea Party)가 지지하는 무명의 후보에 당한 충격적인 패배여서 공화당이 대혼란에 빠졌다. 이민개혁법안을 비롯한 주요 현안 처리는 물론 공화당의 압승이 예상되던 중간선거 판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캔터 하원 원내대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10일(현지시간) 치러진 버지니아주 제7선거구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랜돌프-메이컨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브랫(49) 후보에게 득표율 55.5% 대 44.5%로 패배했다. 7선의 캔터는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됐던 공화당 거물이다.

캔터 원내대표는 패배가 확정된 뒤 “여기 많은 사람들이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나는 이 나라를 믿는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미네소타주 연방하원의원 빈 웨버는 “이것은 대지진이다. 아무도 결과를 예상치 못했다”고 탄식했다.

이번 패배는 미 의회 역사상 최대 이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투표 직전까지도 캔터 원내대표가 어느 정도의 표차로 승리할지에 관심을 쏟을 정도였다. 워싱턴포스트는 “(개표가 시작된) 10일 밤까지도 브랫이 캔터의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캔터 원내대표의 선거모금액이 540만 달러인 데 비해 브랫 후보는 20만 달러에 불과했다. 브랫 후보는 캔터 원내대표가 기존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사면에 찬성하는 등 이민개혁법안에 너무 타협적이라고 집중 공격했다. 하지만 최대 패인은 방심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캔터 원내대표가 승리를 자신해 다른 공화당 후보에 대한 지원 유세와 선거자금 모금에 많은 시간을 썼다는 것이다. 선거 몇 주 전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인력과 자금을 대거 투입했지만 반전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티파티 그룹은 “공화당 주류에는 종말론적인 경고”라며 “일반 평당원의 반란”이라며 반겼다.

이번 선거 결과로 상원을 거쳐 하원에 넘어온 이민개혁법안의 처리는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 캔터 원내대표가 공화당 내에서 법안에 온건한 입장이 아니었지만 ‘타협파’로 몰려 패배했다는 점에서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이 몸을 사릴 공산이 크다.

조만간 은퇴가 예상되는 베이너 하원의장 후임자로 거론되던 캔터 원내대표의 낙마로 공화당의 차기 리더십도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무엇보다 ‘작은 정부’와 ‘적은 세금’을 내세운 티파티 등 보수파의 입김이 세지면서 공화당이 ‘우(右)’로 한 클릭 더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간선거에서 상원까지 과반의석을 공화당에 내줄 것으로 관측되는 민주당엔 희소식이다. 공화당에서 주류·온건파 대신 강경보수파가 전면에 나설 경우 무당파 유권자들의 표심은 민주당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