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교수의 백혈병 이야기] 2001년 5월 국내 환자 6명에게 ‘글리벡’ 처음 투여

입력 2014-06-17 02:48

1999년 귀국 당시만 해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유일한 완치법은 동종이식이었다. 더 많은 환자의 이식을 위해서는 비혈연 골수기증자를 확보해야 했다. 국내 2곳의 기증자은행에서 확보하고 있던 기증자는 채 5만명을 넘지 못했다.

기증자 확보를 위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비혈연 골수기증자를 확보하고 있던 대만의 츠지재단의 협조를 얻어 20만명이 넘는 대만 골수기증자의 골수를 국내 환자의 이식에 이용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2000년 초에 들어 미국과 유럽에서 ‘글리벡’이라는 새로운 항암제의 임상시험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노바티스사에 수차례 이메일을 보내며 백방으로 노력했다. 당시 노바티스사는 “1, 2상의 초기 암 임상연구에 한국의 연구자는 참여 기회를 줄 수 없고 향후 다른 연구 프로그램 참여를 고려해 보겠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마침내 그해 12월에 열린 미국혈액학회에서 글리벡의 1상 연구 결과가 처음 발표됐다.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인터페론 치료에 불응성을 보여 임상연구에 참여한 61명 전원에게서 완전혈액반응을 얻는 기적적인 것이었다. ‘글리벡 열풍’으로 전 세계의 의사와 환자들이 글리벡을 구하기 위해 노바티스사에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했고 언론은 앞다퉈 이 약의 놀라운 효과를 보도했다. 필자도 글리벡의 조기 국내 도입을 위해 환자들과 노력한 결과, 드디어 우리나라의 환자에게도 글리벡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다. 기존의 인터페론 치료가 듣지 않거나 가속기나 급성기로 진행된 환자를 대상으로 ‘동정적 치료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공정한 환자 선정을 위해 한국희귀의약품센터와 대한혈액학회의 위임을 받아 필자가 위원장을 맡아 5인으로 구성된 글리벡공급심의위원회를 구성했고 전국의 병원에서 신청한 환자의 의무기록을 확인하고 무상으로 글리벡을 공급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2001년 5월 15일 마침내 성모병원에서 첫 6명의 환자에게 글리벡이 투여됐고 결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투약이 시작된 지 불과 1주일 이내에 모든 환자들이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 노바티스사의 도움으로 2003년 2월까지 총 460명의 환자에게 글리벡을 공급하는 환자 지원 프로그램이 지속됐고 비싼 약가 때문에 조기에 건강보험 급여를 희망하는 환우 단체들의 활동(약 150억원)이 이어져 마침내 그해 2월에 환자 부담금 10%의 아시아 최초 ‘글리벡 건강보험 급여’가 시작됐다.

글리벡은 지난해 특허 기간이 만료돼 14개 이상의 국내 제약사에서 복제약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 특허가 만료된 글리벡은 α-crystal로 2015년 이후에나 특허가 만료되는 β-crystal에 비해 열과 습도에 쉽게 불안정해져서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많이 발생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 한국보훈병원에서 모든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α-crystal 복제약을 사용하도록 해 많은 환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마법의 탄환 글리벡의 놀라운 효과는 혈액검사나 염색체검사만으로는 더 이상 정확한 치료 효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이후 ‘실시간정량적중합효소연쇄반응법(RQ-PCR)’를 통해 더 정밀하게 치료 효과를 평가할 수 있게 됐다. 이 진단법은 개개의 병원 등에서는 국제표준검사를 시행하기가 어려워 국내 25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Path in CML 프로그램’이 시작돼 매년 1000명 이상의 환자에게 표준화된 무상검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있다.

김동욱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