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5)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입력 2014-06-13 03:35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있는 수가의 우물이 있는 곳에 세워진 그리스정교회.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던 이 우물가(요4:5)의 이야기는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 예화로 자주 등장한다.
헤롯이 BC 20년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건설한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 복원 모형 모습.
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전이 있던 그리심 산.
갈릴리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가르치던 예수께는 아직도 아버지의 응답을 받아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가나에서의 기적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장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친 마리아와 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시 ‘두드림’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요 2:13)

그가 예루살렘에 간 것은 이사야서의 ‘말씀’ 때문이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장터가 되어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두드림의 기도’를 위해 성전에 올라갔던 예수는 그들이 파는 양과 소를 내쫓고 돈 받는 상을 엎으며 외쳤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

유대인들이 그의 권위를 증명할 만한 표적을 보이라고 하자 그가 대답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BC 586년 바벨론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바벨론에서 귀환한 건축기술자 스룹바벨이 BC 536년 재건을 시작하여 BC 516년 초라한 규모로 성전이 준공되었다. 그 후 이두매 출신으로 유대 왕이 된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BC 20년 성전 복원을 시작하여 46년 만에 완공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요 2:20)

그러나 예수께서는 선지자의 말씀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호 6:2)

그리고 밤에 그를 찾아온 산헤드린 의원 니고데모에게 대답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여기서 ‘물’은 바로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던 이사야서의 ‘내 집’이 오직 성전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예수께서는 새로운 ‘두드림’의 장소를 찾아 사마리아 길로 들어섰다. 유대인들은 갈릴리로 갈 때 천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는 곳을 피해 요단 길로 다니고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아무도 다니지 않은 그 길을 택했던 것이다.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래도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요 4:5∼6)

실로에서 세겜으로 가는 그 길의 오른쪽에는 저주의 산 ‘에벨’이, 왼쪽에는 축복의 산 ‘그리심’이 있었다. 그 가운데 야곱의 우물이 있고, 여섯 시는 유대 시간으로 정오, 해가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아버지와 독대하기 좋은 시간과 장소였다. 빌립과 나다나엘을 먼저 동네로 들여보내고 우물가에서 혼자 아버지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사마리아 여자가 나타났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요 4:7)

그것이 예수의 ‘두드림’이었다. 사마리아 여자의 반응이 특이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이까.”(요 4:9)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더럽다고 상종하지 않는 것은 BC 722년 앗수르 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정복할 때 이방 군대들을 끌어와 사마리아 여자들을 모두 겁탈하게 한 인종청소 정책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부하던 사마리아의 이스라엘인들은 모두 잡종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바람난 이스라엘의 남편이라고 했다.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렘 3:14)

북왕국 이스라엘은 먼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다가 앗수르에 멸망당했다. 그러나 남왕국 유다도 BC 586년 바벨론에 멸망당했다. 먼저 앗수르에 멸망당한 북왕국은 그 후 남왕국과 함께 바벨론 시대를 거쳐 페르샤, 헬라, 애굽 등 다섯 남편을 섬겼고, 이제 또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와 생명의 물에 대하여 대화하던 예수께서 말씀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

그러나 여자가 대답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여자가 그렇게 말할 때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의 역사를 떠올리셨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요 4:17∼18)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9)

실제로 그 여자에게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또 다른 남자와 동거 중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응답’이었다. 이 여자에게 ‘이스라엘의 임금’이라는 또 다른 남편을 소개해 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리고 다섯 남편이 있었던 사마리아를 유대인들이 네 명의 남편이 있었다고 잘난 척할 일도 아니었다. 그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진정한 ‘남편’이 누구인가를 알려 주는 일이었다. 사마리아 여자는 하나를 더 확인하려 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20)

이미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수가의 우물가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라고 응답을 받은 예수께서 감격하여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이 정오의 독대로 응답을 받은 예수께서는 이후로 오직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행하는 일에 전념하셨다.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5∼6·한글개역판)

그가 말씀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을 때 헤롯 안디바에게 체포된 세례 요한이 그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물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예수께서 그들에게 명확한 답변을 주어 보내셨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한글개역판)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