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기차여행은 모처럼 호젓한 둘만의 시간이다. 대지를 적시는 빗살이 고속전철의 차창을 대각선으로 스치는 날은 무드에 약한 아내에게 연애시절 늦은 밤 서울 명동에서 을지로를 거쳐 종로를 걷던 순간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주말의 지방 문화유적지 답사 나들이는 그 자체로 설렘과 기대의 시간이다. 동호인들과 함께하는 1박2일의 일상탈출은 각자의 직장과 생활환경을 떠나 문화관광이라는 주제어 하나로 일체감을 선사한다.
우리는 지난 50여일 동안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이 얼마나 고귀한가를 체험했다. 그 관계성과 가치를 앗아가는 어떤 요소도 용납할 수 없음을 공감했다. 모두의 행복과 안전을 담보하는 시스템의 작동은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한겨울 벌거벗은 자작나무껍질마냥 속살을 드러내며 추상같은 깨우침을 주고 있다.
슬픔을 치유하기도 벅찬 가운데 이른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번 여름휴가는 사랑하는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자. 평소 바쁘다고 하지 못했던 말을 하며 서로의 존재와 관계성을 확인하고 내면의 아픔도 치유해보자. 우리는 한과 눈물에 익숙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전과 인내, 역경에 대한 불굴의 의지도 대단한 민족이다. 경제는 분위기다. 우리에게는 신명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문화를 통한 한류 바람이 지구촌을 강타하는 가운데 ‘강남스타일’ 20억뷰를 기록한 싸이가 또 하나의 신곡 발표로 유튜브와 모든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같은 힘은 어디서 나올까? 문화와 여가와 관광이다. 치열한 예술혼이 역사의 흔적에 녹아 있고 그것이 스스로를 돌보고 충전과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부드러운 산하에서도,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에서도, 삼면의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서도 멈출 줄 모르는 전진과 열정의 에너지는 솟아오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관광업계의 조사 결과를 종합할 때 지난달 소비심리지수는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행비 지출도 줄고 관광 매출액도 30∼60% 감소했다. 지역 축제는 328건이나 취소 또는 축소됐으며, 수학여행과 단체여행 취소로 570억원의 매출이 감소했다. 관련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포함해 관광·여행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런 중에도 5월 관광주간의 개별 여행을 통한 이동 총량은 580만일, 소비 지출액은 4000억원으로 보고됐다. 지난 어린이날 연휴 중 엄마, 자녀 나들이를 포함한 국립경주박물관 입장객 수는 개관 이래 신기록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러한 수치는 또 다른 차원에서 우리 민족의 위기극복의 탄력성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사회적 재난은 자연 재난과 달리 경기를 급랭시킬 수 있으며 우울한 마음에 소비는 줄고, 기업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악순환을 초래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경제에 치명타를 준다. 마침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내 관광을 통한 ‘회복의 정책’에 착수했다. 여행심리 회복과 관광 콘텐츠 확대 및 관련 업계에 대한 지원 그리고 안전하고 편리한 관광 환경을 조성한다는 정책 의지를 피력했다. 국민 연평균 여행일수가 1일 증가하면 소비가 2조5000억원 늘고 일자리도 5만개 창출된다.
이번 여름에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성 회복에 하루를 더 할애해 보자. 생산과 재고 관리, 마감시간 등의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떠남을 통해 의외성에서 만나는 문제 해결의 기쁨을 맛보자. 많은 여행사들이 여름휴가에 맞추어 다채로운 여행상품을 출시한다고 한다. 성찰과 치유의 여행지가 제시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회복이 필요하다. 관광주간과 ‘문화가 있는 날’을 통해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고 가라앉은 국민의 사기를 올리고 위기의 지역경제를 살려보자.
박광무 한국문화관광硏 원장
[기고-박광무] 일상의 탈출로 회복의 역사를
입력 2014-06-12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