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69) 선장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첫 재판에서 피고인 대부분이 혐의를 부인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울분을 참지 못했다.
10일 오후 2시 광주지법 201호 법정. 피고인들은 대체로 구호조치가 미흡했고 먼저 구조된 데 대한 비난은 감수하겠다면서도 구호조치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배가 상당히 기울어 퇴선했을 뿐 살인이나 도주 의사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분노해 "짐승보다 못한 XX" "살인자"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살인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선장 등 4명,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또는 유기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11명 등 피고인 15명에 대한 이날 재판은 사고 후 유가족과 피고인들이 처음 대면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광주지법 형사 11부(부장판사 임정엽)가 진행한 재판 실황은 보조법정인 204호로 실시간 영상과 음향이 전달돼 유가족들이 방청했다.
검찰이 기소장을 낭독하는 동안 수의를 입은 이 선장 등 피고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법정 바닥을 내려다보거나 이따금 재판부와 방청석을 번갈아 쳐다보기도 했다.
박재억 광주지검 강력부장은 미리 적어온 공소사실을 읽던 중 감정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방청석에서도 유가족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김병권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장은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아문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은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요즘도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엄마, 아빠 나 왔어'라고 말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피고인들이 탈출하라는 방송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도망가려고 했던 순간에 안내라도 했다면 아이들은 살 수 있었다"며 "이것이 살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살인인지, 피고인들은 승객뿐 아니라 가족의 영혼까지 죽였다"고 비난했다.
유족들은 피켓을 들고 법정에 들어가려다 제지하는 법원 직원들과 10여분간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재판에서는 수학여행단 등 승객에 대한 피선명령을 내리지 않고 탈출한 피고인들의 행위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되는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이 기소장을 읽는 데만 3시간가량 걸렸다.
오후 5시55분쯤 4시간여 만에 첫 재판이 끝난 뒤 김병권 가족대책위원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진실도 없었고 거짓으로 일관했다"면서 "법정에 들어서면서 웃음을 보인 피고인도 있었고 반성의 기미도 전혀 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뒤 이 선장 등을 태운 호송차가 떠나려 하자 분을 참지 못한 유족들이 막아서기도 했다.
앞서 광주지법은 오전 11시 내·외신 기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법원 측이 재판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연 것은 그동안의 관행에는 없었던 일이다. 한지형 공보관은 간담회에서 "재판진행 상황을 국민들에게 신속히 알리기 위해 법원이 관행을 깼다"고 말했다.
광주지법은 피고인석 등 법정을 재판규모에 맞게 개조하고 방청권도 미리 배부했다. 또 재판부와 검사석, 피고인석 등 그동안 촬영금지 구역이던 법정 내부에 카메라 3대와 경기도 단원고 수학여행단 학생들의 증언에 대비한 화상 모니터도 설치했다.
'재판준비기일'이라고 불리는 이번 재판은 향후 원활한 재판 진행을 위한 것으로 핵심 쟁점과 증거채택을 마칠 때 마무리된다. 통상 3개월 안에 종결하며 횟수는 제한이 없다.
다음 공판 준비기일은 오는 17일 오전 10시로 잡혔다. 재판부는 당분간 매주 화요일 재판을 열기로 했다.
다음 재판에서는 이날 의견을 듣지 못한 나머지 4명의 혐의 인정 여부와 검찰 증거신청에 대한 변호인 측 의견 진술, 변호인 측 증거신청이 있을 예정이다.
앞서 이 선장 등은 재판을 3시간여 앞둔 오전 10시40분쯤 법무부 호송버스를 타고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지검 구치감으로 호송됐다. 이 선장은 호송버스 맨 뒷좌석에 앉았다가 다른 14명의 선박직 승무원들이 모두 내린 뒤 가장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려 구치감으로 이동했다.
광주=장선욱 김영균 기자 swjang@kmib.co.kr
반성없는 선원들… “가족의 영혼까지 죽였다” 분노
입력 2014-06-11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