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30분 만에 139명 전원 구명보트 승선

입력 2014-06-11 02:14
1976년 선교선 로고스의 조지 패짓 선장(왼쪽)과 사역자들 모습.
88년 칠레 앞바다에 좌초된 로고스호. GBAships 제공
로고스 스토리
로고스 스토리/일레인 로튼 지음, 이자영 옮김/좋은씨앗

“선반에 올려놓았던 책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10분마다 배가 얼마나 기울었는지를 확인했다. 누군가가 긴 줄에 연필을 매달아 선반에 놓았는데, 그것을 추로 삼아 기울기를 측정했다. 배가 이쪽저쪽으로 번갈아 가며 어떻게 기우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앞쪽으로 기울면서 쾅 하고 부딪히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뒤쪽으로 기울면서 쾅 하고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계단이 있는 쪽으로 가려면 식당 바깥쪽 갑판을 지나가야 한다. 그쪽은 이미 물이 차서 옷을 적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식당에 있던 의자들은 이미 기울어진 왼쪽으로 다 쓸려 내려가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 붙잡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의 배’ 로고스가 1988년 1월 4일 좌초되고 탈출하기까지의 긴박했던 순간을 전한 내용들이다. 로고스는 ‘떠다니는 유엔’으로 잘 알려진 오엠국제선교회 최초의 ‘선교선(船)’이다.

탈출 순간을 좀 더 살펴보자. 선박 총책임자인 조너선 스튜어트 선장은 구명보트를 내리라고 지시했다. 모든 사역자들에게 10분 뒤 배를 버리고 탈출하라고 했다. 배가 암초에 가로막혀 있는 동안 무려 10도 가까이 배가 기울어져 있었다. 바닷물이 갑판으로 넘어 들어오기 시작하자 배는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구명보트를 내리라는 지시가 있기까지 배는 17도나 기울어져 버렸다. 한 시간이 지나면 배는 40도까지 기울게 될 것이다. 로고스 사역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구명보트로 이동하는 비상 탈출 훈련을 받아왔다. 공황상태에 빠지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팔꿈치로 서로를 밀어내며 앞다퉈 먼저 탈출하려고 행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탈출 지시가 떨어지고 정확히 30분 만에 로고스의 모든 사역자 139명은 무사히 구명보트에 승선해 구조선을 기다렸다.

70년 10월 덴마크 코펜하겐부터 88년 1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까지 로고스는 23만1250해리를 항해하며 복음을 전했다. 우수아이아는 로고스가 사역한 이래로 103번째 나라이자 401번째로 방문한 항구였다. 사역자들은 “로고스가 방문했던 항구 중 가장 환상적인 곳”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선교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88년 1월 4일 밤 11시55분 칠레 앞바다에서 엔진을 끄고 로고스는 멈췄다.

책에는 로고스의 탄생부터 좌초된 마지막까지의 여정, 사역 중에 일어난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다. 사역자들은 비싼 비행기를 타고 선교를 갈 게 아니라 좀 더 소박한 이동수단을 생각했다. 선교지로 가면서 기독서적을 배포하고 복음 전하는 사역을 구상했다. 그래서 로고스가 탄생했다. 로고스는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 전도, 문서 보급, 구호 활동을 펼쳤다.

특히 로고스호가 보트피플을 구조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보트피플에 대해 국가들이 까다롭게 심사하기 때문에 로고스로선 그들을 구조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 난민단체들도 음식과 물, 약품 등의 지원만 할 것을 권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로고스 사역자들은 기도 끝에 결단을 내렸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 구조하자!” 93명의 난민이 승선했다. 한번도 복음을 접해본 적 없던 난민이 8주를 로고스에서 지내며 ‘반 사역자’로 섰다.

로고스가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준 건 분명했다. 사역을 멈추자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발벗고 나섰다. 로고스를 대신할 배를 구입하라며 헌금했다. “브라질의 한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차고 있던 시계와 귀금속을 풀어 헌금함에 넣는 일이 일어났다. 미국의 어린아이들은 5센트, 10센트짜리 동전이 담긴 저금통을 털어 후원했다. 영국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교회와 기독 단체들이 연합하여 후원 모금을 해주었다.”(264쪽)

하나님은 더 크고 좋은 배를 주셨다. 로고스가 좌초된 지 10개월 후 오엠은 스페인 여객선을 구매해 ‘로고스 2’라는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의 사역은 현재진행형이다. 로고스 2, 둘로스와 함께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로고스 호프까지 그분의 놀라운 계획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